말(言)의 퇴고
말(言)의 퇴고
  • 민병재 수필가
  • 승인 2018.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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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잘 못한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입으로 즉각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책없는 병적 말더듬은 아니지만, 한마디 하려고 하면, "음∼ 어∼" 하면서 항상 반박자가 늦다. 그래서

민병재 수필가 / 대한항맥외과 원장
민병재 수필가 / 대한항맥외과 원장

대화중에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으며 막상 대답이나 반론을 펼칠라치면 말꼬리를 잡혀 버린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 하듯 말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시기를 놓치고 그냥 꿀꺽 삼켜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고개만 주억거리는 모습이 나의 자화상이 됐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던 나는 한때 인턴·레지던트 과정을 받느라 서울에서 5년간 지낸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주임교수님 회진을 수행하고 환자 침상 앞에서 리포팅할 때마다 바짝 긴장을 했지만 걸핏하면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말이 느려 답답하고 더구나 서울 사람들 앞에서 순수 토종 경상도 사투리를 적나라하게 구사했으니 말이다. 나와 함께 근무했던 대구 출신 스텝 선생님이 사석에서 같이 술 먹을 때마다 열정적으로 서울말을 자기 식으로 가르치곤 했었다.

"말끝에 '~요'를 붙여서 말해라. 그카모 서울말 비스무리하게 들킨다."

'자기도 대구 문디사투리 억쑤로 많이 쓰면서…' 하고 속으로 많이 웃기도 했다. 여하튼 서울생활 5년 동안 그 흔한 학회 논문발표 구연을 한 번도 못해봤다. 당연히 입으로 하는 구연 발표는 다른 사람 몫으로 돌아간 대신 난 줄곧 논문만 써댔다. 말을 잃은 대신 글을 수련하는 기회를 얻었다고나 할까. 참 열정적이었지만 어눌했던 청년시절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말을 잘 못한다. 그러나 여태껏 사는 데에 큰 지장 없이 환자 잘 보고 자식들 잘 낳고 기르며 가끔씩 마음 깊은 사람들과 술 한 잔씩 마음을 섞으며 잘 살아왔다.

진나라 당대의 석학이던 한비자 선생도 심한 말더듬이었다고 한다. 말을 더듬는 결점은 명저술작인 '한비자'의 탄생을 가져왔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어떤가. 장애로 인해 평생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사셨지만, 언어를 빌리지 않고서도 전 세계를 이끄는 과학자로서 크나큰 업적을 남기셨다.

언어는 소통이다. 모여 사는 세상에서 지극히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다. 나의 생각을 남에게 알리고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도구다. 동물과의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소통방법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눈빛·표정·몸짓 등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수단은 많다.

글은 입에서 나오는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말보다 더 조리가 있고 감동적이며 깊게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글은 한 번 적어놓은 것을 두 번, 세 번 고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퇴고를 거듭해 정제되고 세련되게 완성도를 높일 수가 있다. 그러나 말에는 퇴고가 없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하늘이 내려주신 말의 어눌함은 두 번 세 번 생각한 뒤에 말을 하라는 '말(言)의 퇴고'라 할 수도 있겠다.

말 잘하는 화법에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퇴고에 정진하는 말의 화법, 즉 어눌함을 나의 장점으로 살려서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어눌해져야겠다. 이 세상 말로 인해 설화는 입을지언정, 말 못해서 화를 입지는 않을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말이다. 그러나 노래에다 박자마저 못 맞추는 음치에 대해서는 정말 부끄럽게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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