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태풍 솔릭의 경로에 대한 기상예보가 크게 빗나가자, 기상청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차라리 옛날 속담이 더 잘 맞는다는 한탄도 나왔다. 과거 조상들은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거나 '서쪽에서 무지개가 뜨면 비가 온다'는 등의 속담으로 기상예보를 대신했다. 인공위성이나 컴퓨터와 같은 과학기술 대신 자신들이 관찰한 자연현상 속에서 이치와 법칙을 찾아내어 생활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던 시절, 속담은 자연법칙과 더불어 인간과 사회의 원리도 이해하고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면서 종래의 속담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즘과 같이 취업난시대에 자녀에게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권하는 부모는 드물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거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으로 침묵과 복종만 강요하는 조직이라면 혁신이 중요한 현대사회에선 지탱하기 힘들다. 옛 속담 중에는 더 이상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말로 변한 것들도 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거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은 여성비하 속담들이다.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모욕적인 표현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과 관련된 속담은 세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에 관한 속담으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된다'거나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것과 같은 표현들이다. 인구집중으로 인한 환경 공해·교통 혼잡·높은 물가 등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살기 힘든 도시임에도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서울에 가야 한다 혹은 서울에 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첨단 디지털 대한민국이지만 중앙에 부와 권력이 집중된 지역구조는 조선왕조 봉건시대와 크게 다름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역관련 속담 중 시급히 버려야 할 속담도 하나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는 말이다. 타지에서 이주한 사람이 오래전부터 살던 사람보다 우월적인 자리를 차지하거나, 혹은 내쫓거나 제쳐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말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자신의 터전에 알지 못하는 남이 들어오는 것이 자신의 이익과 공동체의 평화에 큰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 지역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감정이다. 그래서 '굴러온 돌'과 '박힌 돌' 간의 갈등은 현대사회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초·중등학교 전학생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이나, 농어촌 지역 귀농귀촌인과 원주민 간의 갈등도 그러한 예이다. 국제사회도 '굴러온 돌'을 차단하고 통제하려는 '박힌 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인디언 원주민을 강제로 몰아냈던 미국의 백인들은 남미의 불법 이주자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수백년에 걸쳐 침략하고 착취했던 유럽인들은 아프리카 난민 유입을 막고 이슬람 문화를 차단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그러나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굴러온 돌'은 위협이 아니라 번영과 발전의 촉매제가 돼왔다. 대부분의 지역과 국가는 '박힌 돌' 보다는 '굴러온 돌' 덕분에 더 살기 좋은 지역과 국가가 됐다. 세계적 도시로 성장한 서울이 서울토박이들만 사는 도시였다면 결코 지금의 첨단도시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비결은 이민자 덕분이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다.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외지인이 원주민과 조화롭게 정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국가와 지역의 생존과 번영의 비결이다.

지방소멸의 위기는 낮은 출산율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지역은 서울이다. 낙후한 지역사회의 위기는 '굴러온 돌' 즉, 외지인의 유입이 부족한 탓이다. 그런데 아직도 낙후한 지역사회에는 '박힌 돌' 행세를 하면서 지역사회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역사회가 활력을 유지하려면 '굴러온 돌'을 늘려야 한다. 내국인 외국인 가릴 것 없이 나의 지역에 이주해서 정착할 수 있도록 '박힌 돌'이 배려해줘야 한다. '굴러온 돌'이라고 두려워하고 경계할 것이 아니라, 두 손 들어 반겨주고 '박힌 돌'이 될 때까지 도와줘야 한다. '굴러온 돌이 많아야 박힌 돌도 안전하다'는 새로운 속담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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