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자기 부인
십자가와 자기 부인
  • 천창수 시민리포터
  • 승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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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우리는 종종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도 성공한다"고 말한다. 영국의 주교였던 윌리엄 템플은 우리 인간의 모든 문제는 신앙과 관계되어 있다고 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내 자아에게 "아니오"라고 부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명령에 "예"라고 긍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일들은 남들도 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 같지가 않아서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한다면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을 긍정하면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들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나의 한계 밖에 있던 일들도 내가 할 수 있는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명령하시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일을 완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다. 38년 동안이나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람을 향하여 '일어나 걸어가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기 몸도 일으킬 수 없는 사람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실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경은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에는 불가능해 보여도 순종하면 되는 것이다.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희생과 손해를 전제로 한다. 이것을 피할 길은 없다. 기독교는 세상으로부터 뭔가 부자연스러운 종교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왜냐하면 자신의 유익과 자아를 부정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쉽게만 만들어 놓으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신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다고 하셨다.

참된 생명을 찾고 싶으면 버리라는 것이다. 행복하게 되려면 가난해져야 하고, 기쁨이 충만해지려면 애통해하라고 가르치셨다. 첫째가 되고 싶으면 꼴찌가 되고, 섬김을 받으려면 남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결단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그 길을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셨다는 것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셨지만, 자기를 비우셨다고 했다. 비우셨다는 말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셨다는 뜻이다. 철저하게 자기 부인의 길을 걸으셨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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