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마을과 고현 서문마을 사이 바닷가에 있었던 마을이다. 이 마을을 '갈오지' '가로지' '갈우지' '서목' '조항'이라고도 했다.

'갈오지'란 지명은 장평과 고현의 중간 쯤에 있는 외진마을이란 되서 붙여진 이름이다. 고현의 서쪽 장평가는 길목에 있다고 해서 '서목'이라고도 했다. '조항'이란 말은 바닷가에 있지만 항상 바닷물이 말라 있는 항구라 해서 마를 조(燥)·항구 항(港)을 써서 '조항'이라 했다는 말도 전해져 온다.

6.25때 포로수용소가 들어오기 전에는 냇고랑 주변으로 버드나무가  있었고, 나지막한 초가지붕의 민가가 대여섯 집 있었다. 돛단배와 노 젖는 배로 고현항 주변에서 어업을 겸하면서 농업을 위주로 살았다.

1950년 11월 고현지구에 포로수용소가 생기면서 이 마을 일대가 포로를 수송하는 길목이 됐고, 마을 옆쪽으로 포로수용소 보급창고가 생겼다. 보급창고 뒤쪽에는 바닷가로 경비행장이 있었다. 이 사진은 1973년에 촬영한 사진이다. 이때 장평에 죽도조선소가 설치될 시기였다. 죽도조선소는 삼성조선소의 모체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된 후 포로수용소가 없어지면서 현재의 마을이 형성됐다. 검붉은색 함석지붕은 포로수용소 막사지붕을 뜯어다 지은 집이다. 바닷가에 돌벽 두 개가 서 있는데 이곳이 보급창고가 있었던 곳이다. 이 벽은 보급창고 중간에 설치된 돌담으로 보급창고가 엄청 컸었다. 화물차가 수십 대 들락거릴 정도였고, 포로와 경비병이 사용할 의복과 식품·의약품 등 다양한 보급품이 많이 저장돼 있었다.

보급창고 물품을 피난민들이 몰래 들어가서 가져나와 팔기도 했다. 그때 보급창고 안에서 불이 나면서 여러 날 타기도 했다. 불이 났을 때 한곳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보급창고 안에 벽을 쌓아놨던 것이 현재 남아 있는 돌담이다.

삼성조선소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도시로 변모하게 됐고, 삼성조선소 서쪽에 있는 탄약고와 장평지역 탄약고는 사라졌다. 삼성조선 외부에 있는 보급창고 잔해와 고현·수월·양정의 경비 막사를 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경비막사가 있던 곳은 현재 디큐브백화점 옆이다.

지난날의 사진 한 장이 옛날 갈오지마을의 아련한 마을전경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이곳은 사진에서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완전한 신도시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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