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 울었다' - 권미선 作

폭염과 높은 습도로 짜증이 몰려오고, 활자를 읽는 것조차 귀찮더라도 에어컨 밑에서 페이지 서너 장만 넘기며 힐링받게 되는 책 한 권을 추천한다.

가벼운 듯 진중한 문장들. 왜 이 책이 많은 청춘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 이해가 될 수밖에 없어 처음 읽을 때는 공감을, 두 번째 읽을 때는 위로를, 또 책 넘김을 하면 힐링을 받게 된다. 그저 우리 삶, 그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기에.

화자는 작가가 아닌 지금 책을 읽고 있는 '나'다.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들, 그리고 내 주변에서 한 번쯤은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들에 차마 생각만 하고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풀어나간다.

책에서 지칭하는 '그녀'는 나와 내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고, '그'는 여느 남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로지 내 마음, 내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활동을 하면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가며 눈치 보다 '나'를 잃어버리고 마는 순간순간을 위로해준다.

지도보다 휴대폰이나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아가는 게 익숙해진 세대, 주변의 환경보다 지도만 보느라 여행이 끝난 후, 지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결코 농담이 아닌 세대, 헤매고 길을 잃어버리는 게 용납이 되지 않는 사회의 압박 때문은 아니었을까.

10대에서 20대로, 또 30대로 나이가 점차 들어간다는 것은 내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친구가 그만큼 줄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작가의 이야기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서 왔다는 문자 하나, '오랜만에 같이 이야기하니까 정말 좋더라. 속이 다 후련해졌어. 정말 고마워'에서 작가는 마음이 짠해졌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점점 줄고 있구나는 생각에.

전교생이 다 친구이던 꼬꼬마 시절에는 친구의 친구가 내 친구고, 윗집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도 친구였지만 지금은 '친구' 하나 만들기도 어려워졌다. '친구'를 만나는 것도, '친구'사이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 지금, 마냥 좋기만 하면 되는 관계로만 남으며 그 이상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것도 관계로 인한 감정소모를 줄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100세 시대라고들 한다. 다들 노년을 준비하면서도 평균수명이 채 70이 안 되던 시절을 기준으로 사회적 잣대를 댄다. 서른, 어리다면서 한창이다면서 불안정한 삶은 결코 용서치 않는다. 100세 시대의 서른은 이제 인생의 3분의 1도 채 가지 못했지만, 사회적 잣대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 위치로도 독립된 인간으로서 역할을 다 해야 하는 나이다. 더 이상 시작할 수 없는 나이인 것처럼.

하지만 이 책에선 말한다. 포르투갈의 시인 '카몽이스'의 말을 인용해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고. 모든 것은 끝난다. 끝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시작은 그 끝에 있다. 끝에서 시작된다. 어른이면 울면 안 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정말로 나를 위해 울고 싶을 땐 울어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책, '아주, 조금 울었다'

김정희(옥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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