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는 대나무를 노래하기를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했다. 그럼 바나나는 나무일까 풀일까? 키가 커서 나무일 것 같지만, 파초과 식물에 해당하는 거대한 풀로 거기서 열리는 열매가 바나나다. 이 무더위에 냉장고에서 차게 만든 수박은 여름과일로는 으뜸이다. 그런데 수박은 씨 때문에 먹기 귀찮다. 하지만 바나나는 씨가 없으니 좋다.

바나나라고 본래 씨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까만색의 씨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 먹지 못할 정도였는데, 우연히 돌연변이로 씨가 없는 바나나를 무더기로 발견하게 됐다. 씨가 없으니까 뿌리를 잘라 포기 나누기로, 소위 복제에 의한 번식을 계속하면서 씨는 없어지고 말았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감자다. 감자는 씨로 번식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에서 난 싹을 잘라 심는다. 그렇게 되면 늘 동일한 유전자를 보유한 복제품의 감자만 생산된다. 이럴 경우 감자에 병이 들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 한꺼번에 망쳐놓고 만다. 1840년대 아일랜드가 그랬다. 당시 인구의 40%가 감자에 의존해서 식량을 해결하고 있었다. 별 관리를 안해도 아무 땅에서나 잘 자라는 장점 때문에 가난했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봄에 감자를 심어 놓고, 잉글랜드에 가서 날품 노동자로 일하다가 가을에 돌아와 감자를 수확했다.

문제는 1845년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퍼졌던 감자 마름병이라는 역병이 들자 감자 의존도가 높았던 아일랜드의 타격은 컸다. 대기근에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200만명 이상이 먹을 것을 찾아 아메리카로 이민을 떠나야 했다.

지금 바나나가 감자와 같은 위험에 직면했다. 바나나에게 치명적인 곰팡이병이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바나나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다양성 없는 사회는 그래서 위험하다. 거제경제가 너무 조선산업에 편중돼 있다가 조선경기가 휘청하니 거제 전체가 휘청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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