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의 그때 그 시절

1969년 12월18일. 당시 이한순 거제군수를 모시고 장승포와 일운 지세포로 출장을 갔다오면서 찍은 사진이다.

이곳은 일운면 구조라해수욕장 북쪽 북병산 산복도로 변에 있는 묘지 주변이다.

마을 여인들이 땔감으로 장작을 해 오면서 쉬고 있다. 나무하러 나온 할머니를 따라온 어린 학생들이 묘지 옆 잔디밭에서 씨름을 하고 있다.

학생들과 할머니는 씨름하는 광경을 쳐다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할머니 한 분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다. 그때 그 시절은 먹고 살기가 팍팍하고 힘들어서 아무리 좋은 구경도 즐겁지 않았다.

이 사진 한 장이 그때 그 시절의 역사를 말해 준다. 1960년대는 먹고 살기 어렵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가 힘들었다.

겨울부터 봄까지, 그것도 보리가 익을 때가 가장 살기가 힘들었다. 오죽하면 '보릿고개'라고 했겠는가. 이 시기가 오면 풀뿌리와 나무껍질(초근목피·草根木皮) 등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굶주리면서 살던 시기다.

오래 굶어서 누렇게 부황증에 걸려 죽는 사람도 있었다. 이 보릿고개를 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어려웠던 보릿고개에서 벗어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자'며 시작한 새마을사업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을 거두면서다. 그때부터 경제발전이 서서히 이뤄지면서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됐다.

이때 공무원들은 낮에는 현장에 나가서 주민들과 함께 새마을 사업에 전력을 기울였고, 밤에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호롱불'을 켜 놓고 사무를 봤다. 당시 거제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1년 4월8일 통영과 거제를 연결하는 거제대교가 개통된 후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사진 속에서 그 시절의 우리네 삶이 나타나고 있다. 이 시절에는 어렵게는 살아도 마음은 언제나 평온하고, 이웃끼리 정을 주면서 살았다.

천진난만하게 뛰놀던 저 어린이들도 이제는 칠십 고개를 넘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참 무상하다. 

현재는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되고 있어도, 따뜻한 인간의 정은 온데 간데 없어 삭막한 세상이 됐다. 못살았어도 이웃 정과 믿음이 살아있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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