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하자'라는 말은 동의를 구할 때나 권유, 혹은 약속을 잡을 때 사용한다. 어떤 행동을 함께 하자고 요청하는 뜻을 나타내는 '~합시다'라는 말이 사회생활에서는 상대를 낮춰 보지 않으면서도 존중의 의미까지 곁들여 정겹게 들린다. 정겹다는 것은 반드시 실천해야 된다는 규칙이 아니어서 좋고,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강제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밥 한번 먹자' '술 한 잔 하자' 살면서 이런 막연한 약속을 몇 번이나 했을까, 그 한 번을 실천하기 위한 '막연함'들이 얼마나 돌고 돌았는지 새삼 궁금하다. 약속은 무슨 날 몇 시에 어떤 장소에서 만나자고 해야 이뤄진다. 또 서로가 합의해야 성립된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소중한 것이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라 한다.

하지만 정확한 약속을 잡기에는 급하게 볼 일이 없을 것 같고, 당장 밥 한번 먹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을 사이, 그러나 밥 한 끼 정도는 하면서 정을 돋우어야 할 사이, 너무 오래 멀어져서는 안 되는 적당한 온기를 가져야 하는 사이, 또는 그동안 아쉬움이 있어 밥이나 술로 간격을 좁혀야 하는 애틋한 사이, 밥과 술을 사이에 두고 따뜻해져야 할 사이, 어려운 부탁을 하고 싶은데 빈말로는 어려운 힘든 사이, 이런 여러 사이들이 내뱉는 밥 한 끼, 술 한 잔의 허술한 약속은 이익을 따지지 않아 좋다.

정확하지 않을지라도 아름답지 않다거나 소중하지 않을 것까지는 없다. 우연하게 '~하자'의 약속에 마주 앉은 그런 막연한 하얀 쌀밥 같은 웃음과 맑은 술 같은 친밀함이라면 누가 한 턱 쏜들 대수이겠는가.

불같은 금요일을 보내고 맞은 늦은 주말 오후, 이도 저도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아 누룽지를 삶은 적이 있다. 뜨거운 것으로 굳어졌다가 다시 뜨거운 것으로 제 모습을 찾아가는 누룽지를 끓는 물에 풀어 헤치며 지난 밤의 객기를 재우고 있었는데, 문득, 일찍 세상을 등진 친구가 생각나는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밥 한번 먹자', '술 한 잔 하자'를 외치던 친구가 막상 사라지고 나니 밥 한 끼 하지 못한 설움이 누룽지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당장 밥 한 끼 하지 않아도 우정이 깨어지거나 멀어지는 사이가 아닌데도 '정' 나눌 시간을 베풀지 못한 것이 아프다. 우리 인생도 뜨거운 채로 굳었다가 다시 뜨거움으로 본래를 찾아가는 이 누룽지 한 끼처럼 마땅치 않을 때 그리운 것들을 소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굳이 언제일지도 모를 밥 한 끼, 술 한 잔의 약속을 남발하는 세상 어디엔가 간절한 '~하자'도 있을법하다. 내가 그동안 내뱉은 밥 한 끼의 '~하자'들과 내가 허투루 잊어버린 술 한 잔의 '~하자'들을 모아보면 그동안의 인연들이 한가득 맴돈다. 인연들에게 미안해지는가 싶더니 헛 밥, 헛 술이 돼버린 지난 시간들도 안타깝다. 아무리 바쁜 시절이 됐어도 밥 한 끼, 술 한 잔의 '~하자'가 인사치레가 됐어야 되겠는가 싶다.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도 이제 지칠법하다. 먹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사람 만나는 것부터 줄어든다고 한다. 서로 사정이 어려우니 쉽게 밥 한 번의 약속을 잡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과 '밥 한 끼' 중 어느 쪽이 어려운 시절을 더 힘들게 할지는 대답해 뭣하랴. 어렵다고 지쳐 있지 말고 내 주머니에 돈이 있든 없든 상대방을 가장 싼값에 존중해 하얀 쌀밥 같은 웃음과 맑은 술 한 잔의 친밀함을 만들어 가야 할 텐데 말이다. 자주 약속하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을 사이끼리 밥 한 끼를 나누다보면 또 알겠는가, 경제가 나아져 있을지.

그 밥 한 끼에 밥줄 죄이는 세상은 아직 아니니 그동안 지나친 '밥 한번 먹자'를 불러 모으면 밥처럼 환한 세상 되겠다. '여기 보시오들, 언제 밥 한 번 먹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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