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면 수국축제'의 숨은 주인공
20년간 남부면의 수국을 심고 가꾼 윤길수씨

"아침 6시부터 전지작업과 제초작업을 시작합니다. 한낮에는 햇볕이 억수로 뜨겁거든요. 그때는 좀 쉬어요."

흙 묻은 작업화로 사무실에 들어선 윤길수(59)씨. 오전 10시쯤에 만난 그는 짧은 머리와 까맣게 탄 얼굴, 땀에 젖은 작업복 차림으로 남부면의 무지개 길에서 제초작업 중이었다.

윤 씨는 수국이 피기 시작하던 6월 마지막 날, 32년간 근무하던 남부면사무소에서 명예퇴직했다. 하지만 아직 남부면으로 출근한다. 수국 전문가인 그를 면사무소에서 다시 불렀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제1회 남부면수국축제'가 열렸다. 남부면에서 수국을 심기 시작한지 20년 만이다.

지금껏 수국을 심고 가꿔서 수국축제까지 열리는 결실을 보게 됐다고 하니, 그는 쑥스러운 듯 웃으며 "그 뭐 좋지요"라고 짧게 답할 뿐이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단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이번 수국축제는 그의 노력 덕분이라고 했다.

"32년 동안 남부면사무소에서만 근무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다른 곳으로 갔으면 계속 못했을 겁니다."

남부면 다대마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지역을 떠난 적이 없다는 그. 어떻게 수국을 심고 가꾸게 됐냐는 물음에 20년 전 김한겸 시장 때 '푸른거제 가꾸기' 사업부터 설명했다. 그때는 바람의언덕과 해금강 등으로 남부면에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할 때이기도 했단다.

"당시 거제 전역에 금계국·메리골드·코스모스 등 여러 가지 꽃들을 심었어요. 나 역시 평소 꽃을 좋아해 꽃 심는 일이 재밌었죠. 여름에 피는 꽃을 고민하던 중 동료가 '수국은 꼽기만 해도 산다카더라'는 말에 당장 삽목(꺾꽂이)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그는 삽목으로 뿌리 내린 수국을 다음해 도장포 도로변부터 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도로변은 공사 후라 식물의 착근(옮겨 심은 식물이 뿌리를 내림) 환경이 안 좋았다. 대부분 흙이 없는 도로변에 흙살을 만든 후 식재했다. 그때부터 매해 삽목과 옮겨심기를 반복했다.

식물은 시기에 맞춰 관리가 필요하다. 수국은 겨울에도 꽃이 자연히 떨어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8월 안에 전지를 해야만 다음해에 예쁜 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8월 무더위는 감수해야 한다는 그는 "수국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인근 타 시·군에서 삽수와 묘목을 사러 온다"며 "삽수시기는 맞추기가 쉽지 않다. 수국의 삽수는 가을에 해야 성공률이 높다"고 은근히 자랑도 했다.

그는 또 옛날 수국이라며 한 그루를 가리키며 "집안 장독대 옆에 있던 재래종 수국이다. 땅의 기운에 따라 8가지 색깔로 꽃이 핀다"며 "요즘은 교배종이 많아 단색으로 피는 수국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적으로 올해는 지난겨울 냉해로 수국이 많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이 남부면 수국동산은 냉해를 입지 않아 많은 수국이 폈다. 그는 남부면에서 올해 수국이 가장 예쁜 곳으로 유람선터미널과 유스호스텔 주변을 추천했다.

언젠가부터는 사람들도 여름에 거제도를 가면 수국이 아주 멋지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로 윤씨는 은퇴 후 소원이 더 커졌다.

"사람들이 차를 타고가다가 수국 옆에서 사진을 찍고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지요. 전국에서 모두가 다 알만큼 큰 수국공원을 만드는 것이 소원인데, 땅이 없어요…."

여름날 길가의 수국을 쫓아오다 보면 남부면 무지개길에서 여름꽃 수국이 8가지의 색깔로 한덩이씩 몽환적으로 피어있는 '수국의 정원'을 만날 수 있다. 윤씨의 20년 세월이 피어낸 아름다운 꽃물결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장 지오노의 대표작 '나무를 심은 사람'은 나무를 심고 가꾸는 한사람의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새로운 숲으로 탄생하고, 그로부터 수자원이 회복돼 희망과 행복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글로 썼다.

남부면에서 평생 수국을 가꾸는 윤길수씨야말로 묵묵히 희망을 실천하는 이 책의 주인공과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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