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성장(成長)
자유의 성장(成長)
  • 김한석 칼럼위원
  • 승인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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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김한석 전 거제문인협회장

왕자의 권위를 오예(汚穢) 속에 내려놓고 자비의 연꽃을 피우는 이는 누구인가? 형틀 아래에서도 돌을 맞으며 죽음까지 원죄로 돌리는 사랑의 눈빛을 보이는 이는 또 누구인가? 사람으로서 실수 한마디가 잘못돼도 처형되는 오늘날의 공포가 권좌로 군림한다면 어느 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제나 옳은 문화예술은 자유의 본성에서 싹튼다. 기다리고 반성하고 인내할지라도 성장만이 유효하다. 제어장치의 완벽에서 컴퓨터가 살아나듯 개성의 자유를 달리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늘 책임과 구속이 자발적으로 따른다. 그리고 자유는 방만한 일탈과 나약에서 실패를 맛보게 된다.

전체를 아우른다는 것은 전제적 일인독재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적 정당과 합치에서 가능하다. 자주국방도 국민의 자유의지적 단합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자주와 자강의 국방을 서두르고 이에 기존의 한미동맹을 역사적 혈맹과 우의로 다져야 할 때다. 이른바 '쌍 중단'을 내세우는 중국에 대해 경제교역의 신뢰로 맞서야 한다.

오늘날 국제 정세에서 체제의 일당 전제적 통치와 다수 정당의 민의에 의한 민주적 국가 통치권력이 동전의 양면이라면 주체의식의 현 시점(위치)은 다르지 않는가? 국익 차원에서 선택 과정의 역사는 같지 않다.

북핵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문화와 경제로 도도히 발달된 핵 이상의 핵무기로 진실한 '우리'가 진화한 통일의 세상일 것이다. 지금 현재 이 시점이 소중한 것은 우리에게 모든 가능이 열려있기 때문이며 자각된 동의적 합치가 폭발적 핵을 상징하기도 한다. 통일과 평화와 그러한 감동의 결과가 목적이 됨으로써 가일층 국민 총력 에너지를 자아낼 것이다.

줄 것을 다 주고 의심없이 들어준다는 것은, 북핵폐기(VCID)의 현안을 트럼프가 이것 하나만은 실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만약 북한이 약속을 시한적으로 지키지 않을 때 트럼프는 약속이행의 실력을 구사해 미국의 국익은 물론 세계적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을 사랑해 보라. 피가 가서 (와서) 데워준다.  뻣뻣해지는 그 자리에 피를 이끌어 들이고 피가 돌게 되니 열이 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생산된 에너지다. 이런 일이 우리 육체에 일어나므로 살아나서 활동하게 된다. 삶의 활동에 이르면 이것은 또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의 원천이 돼 일련의 연관 관계를 일으키는 작동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정치도 아픔을 포용하는 힘이다. 산업은 근본적으로 기업규제 완화와 고용·투자가 도치현상이 아닌 생산적 질서로 거듭날 때, 일자리가 초심으로 돌아올 때 원만한 경제성장 발전을 기약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평화적 무드가 조성되고 남북교류가 다방면에 일어나는 것과 함께 북의 핵 폐기도 실천돼야 한다. 핵에 대한 선제방어와 타격은 생명수호의 결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적 강자의 반열에 설 때 국제원자력협약(IAEA)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을까?

요컨대 문화의 총 체력은 상대적 핵 보유도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들의 국익 국방 실체는 도덕적 문화수준에서 불퇴전의 능력을 유지발전시켜야 한다. 지금 우리는 방어(KAMD)·선제(Kill-Chain)및 응징(KMPR) 등 국방력 조기 전략화를 국민의 일치단결로 가일층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북한이 우리의 자유를 받아들일 때 평화통일은 다가선다. 대북 방송 확성기를 중단해도 북한 인민의 인권과 자유를 독재로 막아지지는 않는다. 한미동맹의 역사성과 중국 변수는 한국의 국익이 우선돼야 한다. 자유로 길러진 국가만이 할 수 있다. '자유'의 엄중하고 고귀한 가치실현을 위한 단합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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