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시민리포터의 그때 그 시절

둔덕면 옥동마을에서 상촌의 점촌마을 앞 도로. 이 도로는 1969년 9월14일 태풍 '엘시'로 폭우가 쏟아져 유실됐다. 도로가 다 쓸려내려가면서 강바닥으로 변했다.

상서마을 주민들이 새마을기를 꽃아 놓고 삽과 곡괭이로 도로복구를 하고 있다. 이때도 젊은 사람들은 직장을 구해서 나가고 대부분 50대부터 70대의 노인들이 복구작업에 나섰다.

당시에는 둔덕으로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차가 겨우 한 대 다닐 정도의 자갈길은 군용트럭이 가끔 산방산의 장작을 실어다가 견내량을 통해 부산·마산 등지로 팔 때다.

필자 역시 태풍 엘시의 피해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부터 걸어다니며 수해현장 사진을 찍었다. 그 당시 사진은 카메라에 필름을 넣어서 광선조절로 사진을 촬영했다. 그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거제도에 몇 되지 않았다. 필자가 나이가 제일 젊은 사진사였다. 그래서 거제군 공보실 임시직 사진기사로 들어가 거제지역을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고현에서 성포 뱃머리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성내마을에서 내린 후 언양고개를 걸어 둔덕으로 갔다. 이 길은 옥동·상촌마을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소구루마(수레)가 퇴비나 곡식을 실고 다니던 길이였다.

당시 둔덕에서 고현으로 다닐 때는 대부분 이 길을 지나 언양고개를 넘어 사등·고현으로 걸어 다녔다. 현재의 언양도로는 조상도 초대시장이 새마을 과장으로 있을 때 새마을사업으로 도로를 개설했고, 그 후 2차선으로 포장을 했다. 우리가 잘살게 된 것도 새마을 경제개발 5개년 사업과 새마을정신이 이뤄낸 것이다. 당시 돈으로 복구를 하려고 했으면 시일도 오래 걸리고,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일심단결해 복구작업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당시 젊은이들도 이제 늙은이가 됐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온 국민이 모두 일심단결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런 정신으로 이뤄낸 이 나라가 현재 지역적 갈등과 정당 분쟁으로 정신이 나태해 간다. 새마을 정신으로 다시 한번 협동단결하는 그때 그 시절이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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