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에서 할아버지를 구한 이한연 할머니

며칠전 장목면 흥남마을 이장이라며 본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의인 이한연 할머니'를 인터뷰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을주민들이 이구동성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본지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한연(70)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고 병원을 찾았다. 입원실에 들어서자 이 할머니는 "인터뷰 안할끼라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그 뭣이라꼬…. 부끄럽게 이리 기자가 오셨소"하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그런 그를 같은 병실 환우들이 이런 좋은 이야기는 많이 알려야 한다고 "인터뷰 하이소, 사진도 이쁘게 찍어주고예"라며 자리까지 비켜줬다.

때는 지난 13일 오후 2시20분께. 흥남마을 한 가정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당일은 6.13 동시지방선거 날로 마을주민 대부분이 투표소에 가고 없었다. 화재가 있었던 김 할아버지 댁의 자녀 역시 투표하러 가고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투표를 마치고 잠시 마을회관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던 이 할머니가 옆집에서 발생한 화재를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다급한 목소리로 "용수야" 하며 자신의 큰아들 이름을 부르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시각장애·하체마비로 볼 수도 걸을 수도 없는 김 할아버지다.

"촌에서는 큰아들의 이름을 부리는기 내를 부리는기라. 그래 퍼뜩 집안으로 뛰어들어 갔제. 필시 뭔 일이난기라는 생각이 들데."

집안으로 들어서자 "불이 났는가? 냄새가 나고 집안에 뜨거운 화기가 난다"며 할아버지가 물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먼저 살펴본 후 타는 냄새가 나는 부엌으로 갔을 때 식탁아래에 불이 난 것을 목격했다.

오후 2시25분. 119에 신고하면서 전기차단기부터 내렸다. 그리고는 개수대에서 물을 받아서 불을 끄기 위해 여러번 들이부었다. 12시26분께 119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오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우찌 끌고 나왔는지 모리것다. 끌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 갑자기 불길이 커지고 연기도 많이 나고…."

할아버지를 현관밖에 끌어내놓은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아! 불이 났다"고 소리지른 후 다시 물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불길은 보이지 않고 연기만 가득했다. 거실에 물을 붓는 순간 유독가스가 할머니 쪽으로 확 덮쳤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가재처럼 구부리며 엎드렸어. 그리고 뒤로 기어나왔지."

그는 당시 모습을 병실 침대에서 재현해 보였다. 이 할머니가 다시 나온 순간 동네사람들이 달려오고 119도 그때 도착했다.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일어났다. 할머니는 그때서야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 가스벨브를 잠궜다고 한다. 그런 상황을 뒤늦게 안 할머니의 자녀들이 "유독가스는 위험하다"며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했다.

다급하고 위험한 곳에 뛰어들기 쉽지 않았을텐데도 할머니는 "사람이라면 그냥 못 있지. 모두가 도와줄라고 안 하겠나. 나도 마찬가지로 사람구실 한거제"라며 활짝 웃었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니,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딸이 그동안 정성껏 모셨는데 집을 비운 사이에 아버지에게 일이 생겼으면 딸의 가슴에 큰 상처가 됐을 기다. 이웃으로 당연히  할 일을 했다. 내 도리를 했다."

이한연 할머니는 1948년 하청면 칠천도에서 태어났다. 스무살에 결혼해 50년째 흥남마을에 살고 있다. "우리동네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서로를 잘 아는 가족과 형제같은 사람들이라 니일내일이 없다"는 이 할머니.

50년 전 시집와서 층층시하에 억척같이 살아왔던 삶과 1남3녀의 어머니로 살아온 이야기도 들려줬다. "3명의 손주를 직접 키우면서 너무 재미있었어. 살면서 제일 행복한 순간은 장성한 자녀들이 결혼했을 때"라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5년전 뇌종양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작년에는 폐암수술도 했다. "암을 두 개나 앓고 있지만 '마음을 다스려 나아야겠다'는 집념으로 살고 있다"는 할머니. 사진을 찍자 예쁘게 찍어 달라며 수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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