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수 칼럼위원
김계수 칼럼위원

한 바퀴, 두 바퀴를 돈다.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바퀴를 돌아오니 작은 틈이 생겼다. 다가가니 영업장 앞이라는 작은 현수막이 펄럭이고 몸집 좋은 물통 두 개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포기하고 다시 떠나려는데 아파트 외벽에 세워져 있던 승용차의 미등에 불이 켜진다. 잠시 기다려 동태를 살피는데 앞쪽에서 소형 승용차 한 대가 천천히 다가온다. 나는 비상등을 급히 켜고 담벽 쪽으로 바싹 다가간다. 눈치를 챈 맞은편 승용차가 물러나고 비워진 아파트 외벽에 자리를 잡는다. 자연스럽게 '휴우!' 숨을 내쉰다. 중요한 업무 하나를 처리한 셈이다.

고객으로부터 호출이다. 방문을 요청한다는 간곡한 부탁에 담벽에 모셔진 차를 움직이는 것부터 걱정이다. 내 차가 빠지고 비워진 자리를 한참 바라본다.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누군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겠지. 시내 한 가운데를 들어서 고객이 있는 곳에 들어서는데, 이런 횡재가 있나, 자리가 비워져 있다. 예상치도 못한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피로를 안고 집을 향한다. '강력접착 경고장 부착 / 견인조치'라는 붉은 벽돌에 선명하게 새겨진 경고 문구가 무색하게 처음 보는 승용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자리를 피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늦은 밤에 다시 옮겨주기로 한다. 시동을 걸고 운전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내 몸무게의 몇 배나 나갈 쇳덩이에게 위로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밤사이 안전하게 서 있어 준다면야.

약속한 식당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나오는 다음 말이 너무 자연스럽다. "형님, 주차는 어디 하셨습니까?", "저 은행 뒤쪽 유료주차장에 대고 걸어왔다. 당신은?", "주차할 곳이 없어 세 바퀴 돌다가 골목상가 앞에 주차했습니다. 전화오면 빼 줘야지요." 주고받는 대화들이 무용담 같다. 주차에 성공을 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따라 모임의 즐거움에 주는 영향이 다르기라도 하듯.

하루 종일 차를 모시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시의 주차난은 심각하다. 주차로 인한 갈등으로 이웃끼리 등을 돌리는 일이 잦다. 새 도로가 생기면 한 쪽은 주차장으로 변하고, 교통의 흐름을 좋게 하기 위한 일방통행로도 마찬가지다. 차량의 증가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주차장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공유주차장이나 빈 땅을 늘릴 수 없다면 기존 주차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책임 있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시내 대형 아파트 주차장을 낮 시간대에 주민에게 개방해 활용해 보자는 의견이 있다. 저렴한 주차요금을 받고 아파트 주차장을 개방하면 상당한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주하는 주민 입장에서 보면 외부 사람이 출입함으로서 발생 가능한 도난, 보안, 주민 안전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 안전과 범죄예방에 대해서는 관련 행정기관이 관찰카메라 같은 예방 시설비를 지원하거나, 지역 내 지구대의 순찰강화, 주차 희망자의 차량번호 사전 등록제도 등 가능한 범위에서 행정지원과 예산에서 책임을 진다면 주민 불안감은 부분 해소될 수 있겠다.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낮 시간 주차장 개방에 따른 분명한 혜택이 있어야 한다.

주로 종일 사무실을 지키는 관공서 직원들은 자차 출퇴근을 삼가고 공용차량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활용 가능한 공용주차장은 시민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 차가 뭐라고, 눈 뜨고 잠들기까지 주차를 위해 신경 곤두세워야 하는 사람들의 일과가 안쓰럽다. 주차의 스트레스만이라도 없어진다면 생활이 얼마나 가벼워질까. 주차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몸을 세상에 안전하게 놓이는 일처럼 여겨진다. 개인에게 해결책을 맡기기에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회 문제다. 아무튼, 오늘도 움직임에 바쁜 형님들, 주차는 잘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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