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9일과 6월18일자 거제신문 칼럼난에 '명의'란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4월9일자 내용은 그렇다. 글쓴이의 지인이 옆구리가 아파서 소위, 'SKY대학' 출신 의사에게 갔더니, CT만 찍고서 환부는 보지도 않고 약만 3일줬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병을  잘 고쳐 이름난 명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아픈부위를 봐주고 말을 잘들어주는 의사만으로도 만족한다. SKY 출신의사는 반성하고 공감하는 연습을 해라'는 충고를 하는것으로 글을 맺었다.

6월18일자 내용을 보면, 글쓴이의 지인은 3일치 약만 처방받은 후 그 정형외과 의사를 다시 방문하지 않은 것 같다. 참고 버티다 다른 병원 내과에 방문해 그 내과의사가 소개해준 외과의를 만나 대학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 SKY 의사는 환부를 쳐다보지 않아 환자를 목숨이 위험한 상태로 빠뜨렸고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한마디 해준 외과의는 목숨을 고치도록 도와줬으며, 명의란 '소통하며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끝을 맺었다.

명의란 공감하고 소통하고 도와주는 것이란 말에 동감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 한가지를 들어서 SKY대학 출신의사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게 했으며, 대부분의 직업인들에게 요구되는 공감·소통·도움이라는 단어로 명의를 규정한 글쓴이의 논지는 침소봉대(針小棒大)이며 사고의비약(flight of idea)일 따름이다.

필자도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을 잘 때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그중 소수는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사적인 감정으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만약 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고 싶다면 알려진 사실과 비교 분석된 통계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해, 지적하거나 또는 방향제시를 해야 할 것이다.

의료행위는 환자와 의사의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데, 경험치 하나로 환자와 의사 사이의 불신을 조장하는 이런 글, 검증되고 확인되지 않은 개인적인 경험하나로 사회적인 직업군을비난하고 충고하는 것은 지성의 영역이 아니다.

현대의학은 학문적인 관점에서 보면 알고리즘의 연속이다. 즉 한 번의 판단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해 진찰과 과학적인 검사를 통해 더 가능성이 있는 진단과 치료의 방향를 잡아가는 것이다. 그 지인분이 X-ray 및 CT 검사를 하고 3일치 약을 처방받은 이후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궁금하다.

칼럼(column)이란 말은 '기둥'을 뜻하는 라틴어 '콜룸나(columna)'에서 나온 말로 '원주(圓柱)·원주 모양의 것'의 뜻에서 신문지면의 난(欄)·특별기사·상시특약기고기사(常時特約寄稿記事), 매일 일정한 자리에 연재되는 단평란(短評欄) 등을 말한다(두산대백과사전).

예전 활자시대에 활자들이 모여 단을 이뤄 기둥처럼 보여 칼럼이라 하던 것이 그 칼럼을 이루는 내용을 이르는 말로 전용된 것이다. 누구나 칼럼을 쓸 수 있고 누구나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모두 칼럼이라 할 수 없고 또한 칼럼니스트라고 할 수 없다. 깊이있는 성찰과 비판으로 울림과 공감이 있는 거제신문의 더욱 단단한 칼럼이 되길 기대해본다.

<거제시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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