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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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신문
  • 승인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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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석진국 거제공증사무소 변호사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고 해안선이 제일 길다는 거제도에 붙은 섬이 몇개 있다. 그 중에서 거가대교와 가까운 이수도가 요즘 갑자기 1박3식으로 유명해졌고, 칠천도·가조도·산달도가 비교적 큰 섬이다. 산달도라는 이름은 산에 달이 뜬다고 해서 붙여졌다 하니 별 시시한 유래도 다 있구나. 삼천리 강산에 산 없는 데가 어디 있으며 그 위에 달이 안 뜨는 곳 있으랴….

산달도에는 산 앞에 있다고 해서는 산전마을, 뒤에 있다고 해서 산후마을 등 3개 마을에 200명쯤이 살고 있다. 이 산달도가 내 오두막이 있는 거제도 법동 바로 앞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어 앞바다를 호수처럼 보이게 한다. 이 법동마을에서 태어난 진돗개 새끼를 얻어 '산달이'라고 이름 지었고 우리집 수문장으로 지내고 있다.

나의 오두막 바로 뒤에 암자가 있고 그 스님은 서예가이다. 그에게 한 번씩 산달도에서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는데 공무원 은퇴를 하고 고향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말로만 듣다가 스님과 같이 지난 여름 그를 만나러 산달도로 갔다. 배를 타고 10분 거리(연륙교가 건립 중이라 이 배도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다. 아니 그런데 이 은퇴자 나와 인사를 나누고 내 이름을 듣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알고 보니 1984년 건국대학교 고시반(50여명)에서 만나서 2년간 같이 공부한 사이였다. 그는 나보다 3살 위. 고시를 준비하다가 그 무렵 7급 공무원이 됐고 나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으로 갔다. 그렇게 헤어진 때가 1985년이니 무려 32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이다. 길치에 눈썰미가 없는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이고 그도 내 이름이 특이하기에 겨우 알아본 것이었다. 그는 국장까지 하다가 퇴직하고 고향인 이곳 산달도와 서울을 오가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다리가 개통되면 이 섬으로서는 천지개벽을 한 셈이겠네요?"

"그렇지. 정말 옛 생각이 나네…." 그러면서 "내가 이곳 산달도에서 태어나서 통영에 있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다른사람의 10배의 임금을 받았기 때문이야. 아버지가 멸치배의 십장이었거든.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갈 수 없었어. 하루 벌어서 먹고 살기에 바빴어. 대학과 군 복무 중에 여기에 한번 다녀가려면 정말 힘들었네. 마산에서 거제까지 오는데 3∼4시간 걸렸고, 꼬불꼬불 진동고개를 지나서 고성-통영-거제…. 그것도 하루 3∼4편 뿐이었어. 거제 터미널에 도착해서도 산달섬 맞은편 법동까지 오는데 또한 두어시간 걸렸고, 차편도 하루에 3∼4번 이었어.

법동에 도착하고 나면 저 바다 건너에 산달도가 있으니 어떡하나? 제일 가까운 곳이 500m쯤 되니 목을 놓아 부르는 거지. 옷을 벗어서 흔들면서…. 운 좋게 저쪽에서 들으면 쪽배를 저어서 데리러 왔어. 산달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 한 명을 쪽배 담당자로 정해서 일 년에 얼마씩 삯을 줬거든. 그 쪽배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수영 기법 중에 '사영'이라고 들어봤는가? 일명 '뱀 헤엄'. 옷을 벗고 소지품을 묶어서 머리 위에 동여매고 젖지 않게 머리를 꼿꼿이 들고 헤엄을 치는거지.(다리가 생기면 여기서 마산까지 아마 1시간 반이면 충분)"

이런 곳에서 살던 사람이 서울에 가서 국가공무원 국장까지 올라 강남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정말 감회가 새롭지 않겠는가. 그의 출세담 보다 훨씬 재미있는 얘기였다. 이런 섬이 몇년 전 연륙교가 생긴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땅값이 치솟았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다. 많이 편리해졌다. 그러나 그만큼 행복해졌는가? 어쩌면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고향. 부모·형제들. 거기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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