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태 수필가/거제수필문학회
서용태 수필가/거제수필문학회

화들짝 잠에서 깼다. 자는 동안 숨쉬기가 편치 못한 탓이다. 벽시계는 새벽 두 시를 조금 넘었다. 머릿속이 개운치 않고 흐릿하다. 며칠 전 감기 기운이 있었으나 약 먹기가 꺼림칙해서 병원도 가지 않고 버틴 적이 있다. 이번 종합검진에서 신장기능이 많이 약화됐다는 진단과 함께 항생제·항히스타민제 같은 약물사용에 유의해야한다는 의사소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일 정도 지나면서 감기는 절로 나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부비동염을 앓게 됐다. 그냥 이러다 낫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신장기능을 의식해서다. 

부비동염은 고통스런 증세를 동반한다. 그 중 잠자는 동안 숨길을 막아 수면방해를 하기 때문에 피로를 달고 살게 만든다. 어느 날 초저녁잠이 들었을 즈음, 코의 두 숨길을 모두 막아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급히 생리식염수로 코안을 세척하는 응급조치를 하고 나서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러기를 삼사 일이 흘렀다. 이제는 코가 막히면 입으로 숨을 쉬면서 잠을 잔다. 하지만 정상적인 호흡이 아닌 탓에 악몽을 꾸기까지 했다. 꿈속에서도 너무 목이 말라 물을 찾아 헤매다 잠에서 깨어나는 일이 잦다. 입안의 수분은 모두 말라 있고, 혀끝에서부터 혀뿌리 근처까지 모두 말라붙었다. 얼른 냉수 한 컵을 들이켰다.

며칠을 그렇게 반복하면서 코의 숨길이 막힐 때마다 입으로 호흡을 한 대가는 혹독했다. 목안이 붓고 목소리가 잠기고 심한 기침으로 아내까지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눈도 아프고 편두통까지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게 됐고, 항생제 처방을 받은 후에야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새삼 인체의 신비로움에 생각이 많아진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적에 코 하나에 두 숨길을 열어주면서 입으로도 숨을 쉴 수 있도록 대비해 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겪는 최악의 순간을 대비해 생명을 구제할 수 있는 비상통로를 만들어 뒀지 싶다.

흔히 우리는 '끈질긴 생명'이라 말한다. 이 생명이야말로 끈질긴 것이 아니라, 이와 유사한 비상사태에서 살아남도록 신은 그렇게 인체를 설계했다는 감탄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비상통로는 위급할 때 한두 번만 써먹어야지 계속 사용한다면 반드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했다.

'나'라는 이 몸뚱아리를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해 365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산소를 받아들이고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장기중의 하나, 그 숨길을 따라 만약 산소가 아닌 독가스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인체 장기기능의 한계를 알게 된다.

전지전능 하신 신이 모를 리 없었으리라. 스스로 생명을 지킬 한계를 넘은 부분까지 설계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그것은 스스로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극복하고 능히 해낼 수 있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었다면 하늘에 대한 경외심도 사라지고, 감사하는 마음도 겸손한 언행도 영원히 잊히는 날이 찾아오고 말았지 싶다. 그러한 인간이었다면 아마도 정도 없고 사랑도 없는 황량한 세상에서 갈 곳을 잃고 미처 날뛸 것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되 결코 영혼이 없는 사이보그로 창조하지 않은 신의 고민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요즈음 잠잘 적에 코로 숨을 쉬면서 폐부 깊숙이 감사한 마음을 담는다. 감사해야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많은 것들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거나 기능이 정지된다면 생명은 위기를 맞게 된다. 하여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천명이 다했거나, 인체설계도를 무시하고 역행했거나 조심하지 않고 세상을 안이하게 살아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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