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난 4월27일 오후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와의 첫 만남도 이뤄졌다. 리 여사는 이날 오후 6시18분 판문점 평화의집에 도착, 건물 입구에 마중 나와 있던 김 여사와 인사를 나눴다.'

남북정상회담 후 신문에 난 기사내용이다. 여기서 주목돼야 할 부분이 '여사(女史)'라는 경칭이다. 사전상의 뜻은 '결혼한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성 여(女), 벼슬아치 사(史)의 여사(女史)는 글자에서 보듯 여성의 벼슬이름이다. 고대 중국에서 후궁을 섬기며 기록과 문서를 맡아보던 관리였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황제와 동침할 비빈들의 순서를 정해주는 일로 확대되었다.

여사는 비빈들에게 금·은·동의 반지를 끼게 하여 모실 순서를 정했고, 생리 중인 여성은 양 볼에 붉은색을 칠하게 하는 등 비빈들을 실질적을 관리하던 사람이었다. 볼연지는 생리의 상징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여사가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로 변했다.

2016년도 수원에서는 비정규직 30대 미혼여성에게 '여사님'이라 불러 문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6급 이하 일반공무원의 호칭은 '주무관'이지만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는 마땅한 호칭이 없어 여사님이라 불렀는데, 수원시 인권센터에서는 이 호칭이 인권침해이며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동안 대통령의 부인을 일컬어 '영부인'이라 불렀다. 본래 영부인(令夫人)은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남의 아들을 높여 영식(令息), 남의 딸을 높여 영애(令愛)라는 접두어 영(令)을 붙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제3공화국 시절 육영수 여사를 대통령의 마지막 글자인 영(領)을 붙여 '영부인(領夫人)'이라는 억지 조어를 만들어, 대통령 부인에게만 쓰는 고유명사처럼 되고 말았다.

대통령 부인의 호칭을 이제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여사'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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