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가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로 인해 많이 근심했던 것 같다. 그들은 지금까지 생명 걸고 예수님을 따랐다.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좋은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은 예수님께 인생을 올인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은 이제 내가 가야겠다고 아리송한 말씀을 하고 있다. 제자들은 답답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염려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하셨다.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 주시겠다는 것이다.

'보혜사'는 성령님의 별명으로 '돕는 자' 라는 뜻이다. 성령님은 오셔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돕는 일을 하신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돕는 분이 계신다. 그분은 돕는다 해도 별로 힘이 못 되는 사람과는 같지 않다. 성령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셨고, 그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의 영이시다. 바로 이러한 분이 우리를 돕는 자로 와 계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령님을 일컬어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하셨다. 성령님 외에 다른 보혜사가 또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보혜사이시다. 요일 2:1절에 예수님을 아버지 앞에서 우리 죄를 위해 대언하는 대언자라고 소개한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런데 이 '대언자'라는 말과 '보혜사'라는 말이 원문에서는 '파라클레토스'라는 동일한 단어로 되어 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범죄 하는 우리를 돕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보혜사이신 것이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바로 성령님이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돕는 보혜사시라면, 성령님은 땅에 오셔서 우리를 돕는 보혜사이시다. 우리는 하늘과 땅에 각각 우리를 돕는 보혜사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인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요 14:18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면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살아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영으로 계시게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고독한 존재이다. 누구나 마지막까지 자기 인생을 혼자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외톨이로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신다. 다시금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성령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거의 날마다 내적 공허와 고독을 느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다르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영혼의 빈곳을 가득히 채우고 계신다. 그분의 풍요로운 생명이 우리 마음을 물댄 동산처럼 만들고 계신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혼자 두지 않는다. 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과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고아처럼 세상에 던져 놓고 계시지 않는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보혜사 되시는 성령님과 영으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는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물댄 동산 같이 삶이 풍성하고 윤택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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