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태 거제수필문학회
서용태 거제수필문학회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요란스럽다.

"별일 없제, 그냥 안 해봤나."

이 한마디 남기고는 수화기를 놓아버린다. 아내는 그런 엄마가 다 큰 자식을 어린애 취급한다며 짜증스런 말투다.

가지가 삭정이 되어 땅에 떨어지고 나면 그루터기에 흔적이 남는다. 옹이다. 나무가 키를 키우고 몸통을 불려나가려면 반드시 가지가 있어야 한다. 나무에 있어 옹이는 거목이 되기 위한 필연적 산물이다. 그러기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목에 박힌 옹이를 보면서도 가슴 아린 감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구순의 장모는 가슴에 옹이 둘이 박혀 있단다. 젖먹이일 적에 맏이를 병으로 잃었고, 다 자라 짝을 지어준 마흔 아홉 살의 둘째 아들을 먼저 하늘로 보냈다.

아흔이 된 노인이 살던 시절이었으니 행복한 날보다 힘든 날이 더 많았지 싶은데 자식 둘을 가슴에 묻은 시련만큼 크지 않았단다. 장모의 가슴에 박힌 옹이는 불행의 상징이었다.

그래서일까 외동딸인 아내가 환갑이 지났건만 하루에도 열너덧 번씩 전화를 한다. 한 번이라도 안 받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놀란 음성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슴에 박힌 옹이는 병적인 조바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옛날 중국의 진(晉)나라 환온(桓溫)이 촉(蜀)으로 가다가 장강 중류의 삼협(三峽)을 지나게 됐다. 한 병사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왔는데, 그 원숭이 어미가 강안(江岸)에서 울며 백여리를 뒤따라와 배 위에 뛰어오르자마자 죽고 말았다. 원숭이의 배를 가르고 보니, 창자가 모두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환온은 크게 노하여 그 병사를 내쫓아 버렸다는 일화에서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부모의 슬픔을 단장의 아픔이라 했다.

이 세상의 부모들 중에는 참척의 고통을 겪고 사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을 것으로 여겨진다. 단장의 아픔은 훗날 그 부모들의 가슴에 커다란 옹이로 남아 전설처럼 영원히 잊힐 리가 없는 것이다.

6.25을 겪으면서 공산 적으로부터 조국을 지키다 어느 이름 모를 산하에서 산화한 자식이 있는가 하면, 베트남이라는 이국땅에 파병돼 자유를 지키다 전사한 자식,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하여 국토방위 중에 적과 교전으로 전사한 자식, 중동에 돈 벌러 갔다가 귀향길 비행기에서 북쪽 불순세력의 공격으로 잃은 자식, 불의의 교통사고로, 병마로, 최근엔 세월호 침몰사고로 얼마나 많은 자식들이 부모들의 가슴에 묻혔는지 모두 다 헤아릴 수가 없지 싶다.

살아 있는 자식을 더는 나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낼 수도 보냈어도 안 된다는 강한 집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딸에게 전화하는 장모의 애틋한 마음을 알게 됐다.

그런 구순 장모가 모진 세월을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비록 당신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옹이 두 개가 박혀 있지만, 결코 당신만 겪는 슬픔도 아니고 하늘의 저주도 아님을 아셨기에 큰 위안이자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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