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7.22.-1967.5.15.)
(1931 캔버스에 유채·152.4×165.7cm)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자 미술관

1907년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의 등장은 당시 유럽을 비롯한 세계 미술사에 큰 반향을 불러와 추상미술이 미술계의 주류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가 됐다. 보이지 않는 것의 본질을 이성적으로 찾아 가는 과정이 과학이라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예술인데 시대의 변화는 예술도 더욱 이성적이길 요구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예술의 본질에 대한 작가들의 고민은 깊어졌으며 표현의 다양성은 당연한 결과가 되었다.

야수파, 입체주의, 추상파, 초현실주의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나타난 20세기 초 미술의 선두주자였으며 미국에서도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주류같이 여겨지는 추상미술의 대척점에 서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적지 않은 화가들이 동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전통적인 미술양식을 선호하며 사실주의, 즉 구상회화의 전통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의 사실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을 가진 구상회화가 아닌 현시대를 반영한 그들 나름의 독창적이고 다양한 양식을 전개해 나갔으니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 미국의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7.22.-1967.5.15.)였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렘브란트가 어둠속의 한줄기 빛을 통해 공간의 해석을 주도했다면 에드워드 호퍼는 밝은 빛속에서 어둠을 표현한 작가라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햇빛속에 있든,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있든 혼자이며 그들은 함께 소통하지 않아 늘 고독한 존재로 묘사되었다.

또한 사실적인 도시의 풍경으로 산업화와 그로인해 비롯된 인간의 심리적 긴장을 표현하거나, 전원의 풍경화나 실내를 묘사하여 도시적 향수를 불러일으킨 사실주의 화풍으로 대중적 관심을 많이 받았으며 그의 작품들은 사물과 사람을 통해 감성적 쓸쓸함과 고독을 표현해 가장 미국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퍼의 (호텔방)이라는 작품속에는 여장을 풀기도전에 침대에 걸터앉아 읽던 책을 꺼내든 여인이 그려져 있다.

밝게 표현된 공간들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져 있으며 창백한 피부와 경직된 모습에서 마치 호텔이라는 낯선 공간에 혼자만 격리되어 있는 듯 한 무거움이 느껴진다.

정갈한 하얀 침대시트와 밝게 빛나는 벽면은 오히려 그녀의 외로움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어 밝음 속에서 옅어져 가는 존재감은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도시인들의 숙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퍼의 작품은 현실에 가려진 심리적 요소와 그 내부를 응시하게 해주는 깊이가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외로움과 고독속에 고립되어 가는 사람의 모습을 따라가면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나의 자화상을 만나게 되어 말 할 수 없는 쓸쓸함과 상실감에 빠져들게 된다.

현대인의 고독을 깊이 있게 그려낸 호퍼의 작품도 1950년 이후 등장한 추상표현주의에 밀려 한때 인기를 잃어가기도 했지만 그의 작업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후 20세기 미국인의 삶의 단면을 반추한 그의 사실적인 작품들이 팝아트와 슈퍼리얼리즘에 영향을 미친 선구자로 평가받게 되면서 다시 한 번 대중의 큰 사랑을 받게 됨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글 : 권용복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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