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원 거제수필문학회
반평원 거제수필문학회

 

창원시 구경(九景) 중에는 가로수길이 있다. 용호동 도지사 관사 옆 도로를 가로수 길이라 부른다. 아마도 창원시 계획도시개발 때부터 메타세콰이어 나무를 심었기에 수령 3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가 길 양쪽에 줄지어 서있다. 봄이면 연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하늘을 찌를 듯 한 기상과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단풍잎이 장관을 이룬다.

언제부터인지 이 골목에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더니 지금은 서른 집이 넘는다고 한다. 간혹 이 길을 지나다보면 데이트족 들이 많이 다니고 커피숍 유리창 안에서 차를 마시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젊은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젊음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오랜만에 친구와 들른 곳은 ○○고을 카페다. 문을 열고 들어서보니 벽면을 가득 채운 음향기기와 LP·CD판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었다. 팝송이나 애창곡 등을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편집하여 들려주는 카페라고 인터넷에 소개돼 있다. 고풍스런 실내장식과 아늑하고 소박한 분위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도 부담없이 추억을 찾아오기도 하거니와 문화예술인도 가끔 들린다고 한다.

'고향의 푸른 잔디'가 은은하게 흐른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친구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다. 1966년에 톰존슨(Tomjones)이 부른 곡으로 우리나라 조영남 가수가 번한해 부르기도 했는데, 죄수가 사형집행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는 슬픈 내용이라고 했다. 나는 고향의 푸른 잔디 노래를(Green Green Grass of Home) 대충 흥얼거리기는 해도 이 노랫말에 담긴 깊은 뜻은 몰랐다.

'…나의 옛 고향은 변함없구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날 반기려 나와 있고. 딸기 빛 입술에다 금발의 내 사랑 메리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구나. 이 보드라운 고향의 푸른 잔디여 .(중략) 그런데 깨어보니 회색빛 벽(감옥)뿐 꿈을 꾸었네. 아 다시 만지고 싶어라 고향의 푸른 잔디여.'

음향기기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과 커피향이 어우러져서 슬픈 영화를 보고난 뒤 감동처럼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고향은 동서고금을 통해 보더라도 조상의 무덤이 있거나. 부모님이 계시거나. 내가 태어난 곳으로. 인간의 그리움 중에서 가장 원초적인 것이 아닌가싶다.

정든 고향을 떠나 이곳 마산으로 왔다. 부모님을 흠모하는 마음이 우러날 때 가끔 산소를 찾아가보지만 높은 산봉우리만 그 곳에 있을 뿐 소중한 추억을 되돌아볼 주변의 정겨운 모습들은 해 마다 조금씩 바뀌고 있다. 급속하게 변모하는 물질문명 때문에 우리의 정서적 감동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게 어찌 내 뿐이겠는가.

지금 내마음 속 고향그림 속에는 어머님 영상이 가물거린다. 봄에는 파란 보리밭에서 김을 매고, 가을이면 잘 익은 곡식을 대바구니 테가 무너지도록 가득 담아 이고 오셨다. 이맘때면 곡식 중에 가장 희소성이 있는 깨 수확 시기다. 깻단을 볏짚으로 묶어 돌담 밑에서 말리고 털고 하셨다. 깻단이 마르면 묶어둔 끈이 늘어나고 어머니는 다시 조여 매셨다. 허기진 어머니는 치마끈만 자꾸 졸라매셨다.

마산 문협에서 회원 시화전을 했다. 세라믹 접시에 새기는 작품이라서 4행에 30자 단문의 시를 출품했는데 자식들 사랑에 평생을 바치시다 가신 어머니를 모티브로 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어머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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