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김미광 전 고등학교 교사

어느 날부터 손목이 아팠다. 워낙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 보니 언제 어디서 다쳤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프기에 두어 달 참았다. 원래 이렇게 대수롭지 않은 증상은 좀 기다리면 저절로 낫는다는 나름의 질병철학이 있는데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대부분 먹히는 것 같다며 이 방법을 고수해왔다. 그런데 이번 팔목 아픈 건 두서너 달을 참았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더 나빠지고 급기야 숟가락도 못 들것 같아 일단 병원에 가 보기로 했다.

내가 병원에 간다니까 지인 한 분이 자기도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골프연습을 하다 한쪽 옆구리에 무리가 갔는지 옆구리가 아파서 돌아눕기 불편하고 옆구리가 부어있고 쑤신다 하셨다.

우리는 의기투합해 가까운 병원으로 갔다. 환자들이 많으리라는 예상을 했으나 다행히 환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침 일찍 오길 잘 했다면서 서로 좋아라 하고 있는데 지인이 진료실 옆에 붙어있는 의사의 약력을 좀 보고 오라고 했다. "왜요?" 했더니 어느 대학 출신인지가 궁금하단다. '나 원 참, 아직도 학벌을 따지시는감? 학벌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의사가 환자 잘 보면 됐지.' 투덜거리면서 가서 보니 다행이 SKY 출신이다. 그럼 의사가 공부 열심히 했고 머리가 좋을테니 증상을 잘 파악하고 다양한 병명에 적용해서 잘 보것네 하신다.

이 분, 아직도 좋은 대학 출신 의사들이 명의(名醫)가 된다고 믿고 계신 듯하다. 내 차례가 됐다. 의사 선생이 좀 피곤해 보였지만 나름 핸섬하다. 어디가 어찌 아프냐 하기에 손목이 여차여차 하다 했더니 X-선을 찍자 한다. 딱 거기까지. 내 손목을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X선을 찍고 나오는데 내 다음 번 차례였던 지인이 왔다. 어찌 이리 빨리 오셨소 하니, 당신도 X-선과 CT까지 찍으라 했단다. "엉? 다친 것도 아니고 골프 연습하다 삐끗했는데 CT까지? 이거 과잉진료 아녀요?" "뭘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봐. 자세히 진료해 주려고 그랬겠지. 의사가 그렇게까지 과잉진료를 하겠어?" 역시 긍정의 아이콘이다.

X선 촬영을 하고 CT까지 찍은 후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오란다. 의사는 뼈는 이상 없고 근육에 염증이 있는 것 같으니 약을 3일분 지어 주겠단다. 그게 끝이다. 아픈 손목에는 여전히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게 30초 만에 나의 진료는 끝나고 지인 차례.

역시 진료실로 들어간 지 1분도 되지 않아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짜증난 얼굴이다. 아픈 옆구리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특별한 이상 없이 근육통이 일종이니 약 3일치 지어주고 그냥 가라고 했단다.

아파서 왔고 비싼 CT를 찍었으면 뭔가 들여다보는 척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무엇에 쫓기는지 아픈 부위는 들여다 볼 생각도 안하고 너무도 심드렁하게 환자를 보더라는 것이다. 지인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내가 '어디 한 번 봅시다' 해서 봤더니 지인의 옆구리는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었다. 의학지식 전무한 내가 봐도 불퉁하게 솟아있는 옆구리다. 게다가 만지면 많이 아프단다. 그런데 SKY 출신 의사는 환자의 아픈 부위를 만져보기는 커녕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그러기에 SKY출신 의사가 뭣에 좋다고. 나도 더불어 짜증이 났다.

나는 이 병원의 앞날이 무척 걱정이 된다. 이런 의사들이 많아질수록 환자들은 이 병원을 외면할 것이다. 나도 앞으로 다시는 이 병원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우리는 명의(병을 잘 고쳐 이름난 의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환자의 아픈 부위를 봐주고 환자의 말을 들어주고 성심 성의껏 처방해주는 의사만으로도 만족한다. 이런 명의(이름만 의사)는 이제 반성하고 환자와 공감하는 연습을 좀 하셔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진짜 명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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