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여성장애인연대 신둘자 대표

2018년 춘분인 21일 느닷없이 내린 눈으로 하얀 봄이 왔던 다음날 하늘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약속시간 보다 일찍 거제시여성장애인연대 사무실에 도착했다.

조금 후 여성장애인연대 회원들이 차에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내리기 시작했다.

사무실로 우르르 들어섰다. 인터뷰가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다들 착하고 선한 눈으로 기자를 쳐다보며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제각각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당황스러웠다. 연대 김연화 사무국장의 소개로 말없이 웃고 있던 신둘자 대표를 드디어 소개 받았다.

장애여성으로 사는 불편함이나 바람 등을 질문했다. 연신 '불쌍한 여성'이라고 표현했다.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정작 그녀 본인은 장애가 전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말이나 행동을 했다. 궁금했다.

"양정마을 방앗간집 뒷집에 살았어요. 3남 4녀의 둘째로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8살 쯤 무릎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엄마는 혼자 들일을 했어요. 아픈 나를 데리고 치료를 다닐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뱃일을 다녔고요. 쉬는 날이면 무릎이 부어오른 나를 등에 업고는 집에서 5리 떨어진 버스길을 다녔어요. 어떤 때는 몇 시간씩 아버지랑 같이 버스를 기다렸죠. 연초면 주렁마을과 장승포로 치료를 다녔어요."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의 사랑이 장애도 인식하지도 않토록 하는 자존감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겨울이면 작은방은 고구마가 반을 차지하고선 8부 천정까지 꽉 찼어요. 모두 가난했던 시절 친구를 위해 엄마 몰래 고구마를 옷가지에 싸서 가져다주고는 했죠. 무릎 때문에 들일은 할 수 없었어요. 집안일만 할 수밖에 없던 나를 엄마는 늘 혼을 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내편이었어요. 열살 위의 언니가 돈을 벌러 부산으로 가고난 후 동생들 돌보는 것과 집안 일은 전부다 내 몫이었어요."

자신이 커온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던 신 대표는 "내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의식은 전혀 못했고, 무릎이 아프다고 생각했다"고 되돌아봤다.

"친구 결혼식에서 남편을 소개 받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남편에게 고맙고 감사합니다. 결혼을 하고 몇 번의 수술 후 4급 장애인 등급을 받았다.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 어른들 앞에서 예의없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싫어 밖에도 안 나갔다"고 했다.

이웃에 살던 김연화 사무국장을 통해 거제시 여성장애인연대와 인연을 소개한 신 대표는 "연대 사무실에 와서야 처음 여러 부류의 장애인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면서 "이곳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자세히 돌아보고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와 함께 "여성 장애인들이 더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연대회장을 맏게 됐다"고 회장직을 맡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연대에서는 청소년회관에서 일주일 세 번 교육이 있는데 모두 함께 우쿨렐레·공예·요가·문화체험 자조모임을 통해 사회적응 훈련을 하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여성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독립생활을 지원하고, 방문상담과 함께 장애여성 가족캠프나 가사지원사업, 부모역할지원멘토링사업도 같이 하고 있다"고 연대활동을 설명했다.

이번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된다는 것에 대해 신 대표는 "장애인등급제는 의학적 판정에 따른 등급을 기준으로 돼 있지만 개인의 욕구와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애인에게 등급을 부여해 낙인효과를 가지고 있다"면서 "저는 등급제 폐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으며 내년 7월 폐지는 환영할 사항"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신 대표는 "정말 일을 못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장애가 있던, 없던 누구나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누구나 일할 수 있어야 하며, 자립 할 수 있도록 도움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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