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지방을 여행하게 되었다. 관광안내도에 1929년에 지어진 'ㄱ자형 두동예배당'이 소개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ㄱ자의 꼭지점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마루가 나누어져 있는데, 강단을 바라보아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신도들이 앉는 자리였고, 그 사이 기둥에 휘장을 쳐 남녀가 서로 볼 수 없게 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학교에는 남자반과 여자반이 따로 있었고, 교회에도 강단을 향해 오른쪽에는 남자들이 앉고, 왼쪽에는 여자들이 앉아 예배를 본 기억이 눈에 선하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은 유교의 경서인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에 남녀 간의 문란한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특히 왕실 사람들이 여자를 얻기 위해 내전도 불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황실족보의 혼란이 야기되자 공자의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 것이다.

본래 이 말의 '석(席)'은 처음에 풀초(++)변이 위에 붙은 '석(蓆)'으로 깔개나 요를 뜻한다. '남녀가 일곱 살이 되면 같이 앉지 않는다'가 아니라 '남녀가 일곱 살이 되면 한 이불에 재우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럼 남녀가 몇 살쯤 돼야 같이 앉을 수 있는지 궁금한 일이다. 유교의 경전에는 그 어디에도 해답이 없다. 다만 논어에 빠진 공자의 일화를 기록한 책인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안숙자(顔叔子)의 이야기를 참고해볼만 하다. 노(魯)나라에 한 홀아비가 살았는데 이웃 동네에 사는 한 과부가 폭풍우로 지붕이 무너지자 하룻밤 재워달라고 찾아온다. 그러나 홀아비는 문을 닫으며 "그대와 나는 나이가 육십 전이니 동석할 수 없소"하고 거절하는 내용이 있다. 당시 평균수명으로 볼 때 육십이면 요즘으로 치면 백 살도 넘는 나이다.

요즘 '펜스 룰(Pence Rule)'이라는 말이 화두다. 남성이 가족 이외의 여성과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인데, 말은 낯설지만 뜻은 낯설지 않다. 우리 선조들은  오래 전부터 펜스 룰을 생활이념으로 삼았으니 그게 바로 '남녀칠세부동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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