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과잉 근심현상을 묘사하는 표현으로 '램프증후군(Lamp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다. 근심이라는 환영의 마술램프를 들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괴롭히는 현상을 지칭한다. 복잡하고 다난한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이 이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하니 놀랍다.

이 용어는 중동의 민화들로 구성된 설화집 '천일야화'에 실린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알라딘과 요술램프'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요정이 등장한다. 알라딘이 요술램프에서 요정을 불러내듯이 현대인들이 근심과 걱정을 불러내어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을 '램프증후군' 혹은 '과잉근심현상'이라 한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걱정들을 램프에서 불러내 헤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겠다.

어니 젤린스키라는 작가는 그의 저서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만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고 했다.

한때 우리는 너나없이 마스크를 썼다. 2015년 5월20일 국내에 '메르스' 환자가 처음 확인된 그날부터 온통 마스크로 뒤덮였다. 전염병은 불안도 함께 퍼뜨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은 자연스레 축하객이나 조문객이 뚝 덜어졌다. 모임이나 행사는 대부분이 취소됐다. 행정관서에서 발송한 긴급재난 문자는 '긴급'이란 표현의 무게가 무색할 만큼 수시로 스마트폰에 도착했고, 보건용 마스크가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긴급재난 문자는 믿을 수 없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달리 피상적인 내용일 뿐일 때가 많았다. 각종 방역용품도 엄청난 수의 종류만큼 실효성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어느 해보다 근심이 깊었던 한 해였다. 그런데 지나서 생각해보면 걱정과 불안의 실체는 상상한 것보다 가벼운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모르고 사는 게 약이 된다.'는 말이 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끊임없이 과잉 근심에 시달리고 불안해한다. 이러한 과잉 근심현상이 바로 '램프증후군'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이 램프증후군에 감염된 우리는 모두 이 병의 환자인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새벽기도에 가서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감사한다. 무사하게 지켜주시기를 기도한다.

주변의 사회적 환경이 우선 불안하지 않은가. 방송이나 신문매체, 인터넷으로 부터 전해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는 시시각각 사건 사고가 동시 다발로 일어난다. 전쟁의 위험, 테러의 공포, 전염병의 창궐, 교통사고 등,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우선 몸이 조금만 아프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혹시 중병에 걸린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근심하게 된다. 가족 중 하나라도 귀가가 늦으면 안절부절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교통사고라도 났는가?" 하고 걱정부터 앞선다.

전화나 문자 메시지가 없으면 우선 불안하다. 대중매체와 SNS 등을 통해 재난과 재난사고도 시시각각 시각적으로 접하여 대리외상을 경험한다. 이로 인해 현대인들에게 불안은 일상이 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대중은 실제 수준보다 위험을 과장되게 인지한다.

이런 불안과 공포를 역으로 이용하여 이를 상품화 하고 있다. '메르스' 여파 시 마스크와 손 소독제가 얼마나 불티나게 팔렸나. 최근에 상영되어 흥행에 성공한 재난영화들도 그렇다. '해운대', '부산행'과 '터널', '판도라'가 좋은 예가 아닐까. 엄청난 관객이 모여들어서 영화 역사의 새로운 기록들이 갱신되고 있단다.

과잉근심 현상, '램프증후군'이 타인과 시스템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게 문제란다. 걱정과 근심이 확대, 전염되는 기회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공동체는 약해져 가고 개인의 불안은 심화되는 추세다.

한 술 더 떠서 다양한 매체는 믿을 수 있는 정보와 근거 없는 소문을 구별하기 어렵게 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고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은 점점 타인과 시스템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위험에 처할수록 방어를 위한 공격에 나선다. 혐오관련 범죄가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피해망상까지 시작된 게 아닐까.

좀 무디고, 둔하게 느릿느릿 사는 법을 배워 볼까나. '램프증후군'에서 벗어나 일상을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걱정과 근심으로 삶을 이어간다면 얼마나 무의미한 인생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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