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영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
임혜영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

가슴도 답답하고 어깨와 허리는 물론, 온 몸이 아프고 무거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몸살이 또 다시 올 것만 같았다. 남편이 와야 아이들을 맡기고 잠시라도 쉴 수 있으니 오로지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그런데 남편은 자신도 휴일이라 쉬어야 한다며 아이들에게 점심을 다 먹이고 나서야 여유롭게 병원에 나타났고,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잠시 나갔다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차키를 챙겨들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갈 곳이 정해져있지도, 오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떠나고 싶었을 뿐이다. 단 한 순간도 쉴 수 없는 고단한 일상, 답답하고 숨 막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에게 탈출구는 없었다. 길을 따라 무작정 차를 몰았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바다.

일찍 시작된 무더위 탓에 해수욕장은 만원이었다. 빽빽하게 주차된 차량들과 짧은 옷차림의 사람들, 멀리서 들려오는 즐거운 비명소리. 점심으로 바나나 한개 밖에 먹지 못한 나는 커피숍에서 빵과 냉커피로 배를 채웠다. 시원한 커피숍에서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저마다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멍하니 한참동안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문득 아이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좁은 병실에만 갇혀 있어야하는 아이들을 생각하자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 입원한 것도 역시 후두염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심한 경우는 없었다. 잠을 자던 큰 아이가 계속 뒤척이면서 울기 시작하더니 꺽꺽대며 숨이 차는 소리를 내는 바람에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났다. 작은 아기가 깰까봐 우는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는데, 아무래도 후두염인 것 같았다. 일단 호흡기 치료약이 있으니 그걸로 흡입치료하고 그래도 안 되면 응급실에 데려가기로 했다. 다행히 호흡기 치료를 하자 효과가 있는지 숨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불안한 나는 거실에서 아이의 몸을 바로 세우고 밤새 안아서 재웠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자 후두염이라며 바로 입원해야 한다고 하였고, 작은 아이도 모세기관지염으로 1인실에 함께 입원하게 되었다.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입원이었다.

무심한 듯 앉아 빈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다 화창한 날씨에 이끌려 밖으로 나섰다. 나무 그늘에 자리를 깔고 누워 한가로이 잠을 청하는 사람, 한바탕 즐겁게 놀고 바닷물에 젖은 몸을 씻으러 가는 사람, 이제 바다에 들어가려고 서둘러 뛰어드는 사람,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바다 풍경을 즐기는 사람.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연인과 함께, 가족들과 함께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문득 외로움을 느꼈다. 나도 일행이 있는 것처럼, 갈 곳이 있는 사람처럼 빠르게 걸으며 이왕 온 김에 바다나 실컷 보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백사장엔 푸른색의 파라솔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고, 군데군데 쳐놓은 알록달록한 텐트가 가을산의 단풍처럼 해변을 수놓고 있었다. 파라솔의 숲을 헤치고 마침내 마주선 바다. 태고 이래 한번도 어김없이 철썩철썩 소리내며 해변을 두드렸을 바다. 바람이 세차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날에는 성난 맹수의 포효와 같은 거친 파도소리로 모든 이를 두려움에 떨게도 하지만,  바람이 잔잔한 오늘 같은 날은 마치 연인의 다정한 속삭임처럼 귀를 간지럽히는 달콤한 파도소리를 들려준다. 그 달콤함에 취해 멍하니 서있자니 나도 모르게 바다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정신이 들어 고개를 돌리니 엄마, 아빠로 보이는 어른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큰 아이 또래다.

두 돌도 채 안된 아기가 자기보다 어린 아기를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것은 아이들의 심리에 너무나 무지했던 우리 부부의 이기심이었던가 보다. 둘째를 임신하자 자신에게 경쟁자가 생길 것을 눈치 챘는지 만삭이 되어갈 수록 더욱 보채며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고 내가 옆에 없으면 잠도 자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엄마가 자신이 아닌 다른 아기를 안고 있는 것을 매일같이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둘째를 안고 모유를 먹이고 있으면 달려와서 아기의 머리와 얼굴을 때리고, 아기침대에 눕혀놓은 동생의 얼굴을 손톱으로 피가 나도록 긁어놓고 야단치면 서럽게 울어댔다. 보다 못한 내가 둘째를 업은 채로 첫째를 안고 달래며 놀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며 진정시켜야만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동생을 때리고 밀어서 첫째를 야단치고 달래주는 것도 갈수록 지쳐 갔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해변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덧 방파제까지 와 있었다. 오후 햇볕이 얼굴을 따갑게 두드리는데 마땅한 그늘조차 없어 햇볕을 등진 채 잠시 웅크리고 앉았다.

작년에는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입원을 했다. 입원을 하면 밤새 링거 꽂은 팔의 주사 바늘이 빠진 것은 아닌지, 링거 줄이 아이 목이나 배에 감기지는 않는지, 링거대가 넘어가지는 않는지 밤새 확인하고 기저귀 갈아대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이들이 퇴원할 무렵에는 내가 감기몸살로 아프고, 이제 모두가 다 나았다고 생각할 즈음 다시 아이들이 아파서 곧 입원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나마 올해에는 작년보다는 입원 횟수가 조금 덜 하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아이들이 계속 아파서 입원을 해댄다면 육아휴직에서 복직도 하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댁에도 친정에도 아이를 맡겨 놓을 곳이 없으니 아이들이 아프면 남편과 내가 고스란히 연차를 써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들이 크면 상황이 조금씩 좋아질 것이라고 주위에서 위로의 말들을 하지만, 육아도 집안일도 서툴고 연년생을 낳느라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내가 이겨내기에는 지금의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우울한 마음에 내가 왜 결혼을 했는지 잠시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돌이킬 수도 없고, 아이들을 생각하고 내가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자 그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의지하고 엄마라고 믿고 따르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으니 그래도 힘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해변에서 들려오던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조금 줄어든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까보다 적은 것 같았다. 시간이 벌써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아이들 저녁밥 나올 시간이 다 되어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이들이 배가 고플 것 같아 서둘러 차를 몰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태평하게 병실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에게 아이들 저녁은 먹였냐고 묻자, 당연히 먹였다며 바람은 잘 쐬고 왔냐고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그저 멋쩍게 웃을 수 밖에. 변화무쌍한 나의 기분변화에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찾아서 하는 남편이 오늘따라 믿음직해 보였다.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면 내일은 더 좋은 날이 오겠지. 모든 것을 바꾸어버리는 시간에 몸을 기대어 지금은 그저 기다릴 수 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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