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둔덕골은 시인 청마 유치환·희곡작가 동랑 유치진의 고향이다. 목련꽃봉우리가 터지기 시작하던 지난 13일 둔덕詩골농촌체험센터에서 소설가 김현길의 장편문학 소설 '임그리워 우니다니'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로써 둔덕골은 시인·희곡작가에 이어 장편문학 작가를 배출하게 됐다.

우연히 산에서 나무하다 시심을 얻어
드디어 쉰 살에 시로 등단한 사람
우리나라 최초의 나무꾼 시인이라고
자랑치고 다니는 사람
누가 봐도 지지리도 못난 사람
바로 그사람 나무꾼 

      - 김현길 詩 '나무꾼' 중

출판기념회가 열리던 둔덕詩골에서 김현길 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는 둔덕면에서 3남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가난한 살림살이 아버지의 오랜 객지생활로 어머니는 거의 혼자서 자녀들을 돌보며 키웠지요. 당시 나는 원인도 모르는 배앓이로 민간요법에만 의지하면서 방안에서 바깥출입도 못하고 친구도 없이 지냈어요.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도 배가 아파 친구들 놀이에 방해가 되어 놀 수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를 회상하던 김 작가는 "몇 해를 그렇게 방안에서 제대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지내다 어느 날 구충약을 먹게 됐는데 거짓말처럼 배앓이가 나았다"면서 "참 웃지 못할 기억이지만, 그때부터인지 혼자 생각하는 것이 습관처럼 돼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런 어린시절이 글 쓰는데 도움이 됐다"면서 "아버지는 옛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어머니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식구들이 예술쪽으로 끼가 있었던 것 같다"고 작가로의 성장배경을 설명했다. 사촌형인 소설가 김병용씨도 글을 쓰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2005년 '시사문단'을 통해 시(詩)로 처음 등단했다. 시집으로 '홍포예찬' '두고온 정원'을 낸 뒤 수필가로도 등단했다. 그리고는 이번에 장편소설 작가로 다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번 장편역사소설은 거제도에서 유배를 살던 정서의 '정과정곡'과 고려 '의종 이야기'다. 그는 고향의 전설과 역사문화를 찾아내 알리고자 장편역사소설 작가가 됐다고 했다. 김 작가의 얼굴과 마음에는 급한 것이 없어 보인다. 나이 마흔아홉에 학업을 다시 시작 한 것도 그의 느긋함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는 심지어 웃는 것도 천천히 웃는 것처럼 보인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감사하지요. 어릴 적부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숭덕국민학교를 다닐 때 처음 글을 썼다는 김 작가는 "그때 선생님께서 '현길이는 글쓰는데 재주가 있네'라는 말에 글쓰는 게 더 재밌고 좋아하게 됐다"며 "일하는 것 보다 책 읽는 것이 좋아 숨어서 책을 읽었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공부가 싫어 배를 탔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소 키우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시를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다. 40대가 되면서 그동안 무심히 써오던 시로 등단하고 싶다는 생각에, 소 키우던 트럭을 타고 대안학교에서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

김 작가는 "자신이 지금에 있기까지 매순간마다 감사하다. 나의 의지대로 된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이 항상 옆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자신은 내려놓았다. 김 작가는 특히 "바람처럼, 공기처럼, 사람들 안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것이 좋다"면서 "그 이야기들이 또 글이 될 줄 알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동네 어귀에 있던 굽은 소나무 같았다. 바쁜 걸음 잠시 멈추고 그 소나무 그늘에 앉아 어릴 적 친구들의 소식을 묻고 싶은 사람이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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