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립박물관 들어서는 '둔덕면'…어떤 역사 지녔나 (完)]
의종 유배로 머문 거제 3년…왕은 폐위됐을지라도 역사 가치는 높아
"단순히 유물 수집·전시 아닌 역사유적·문화 융합한 관광자원 돼야"

의종 24년 9월 기묘일 왕은 단기로 거제현으로 쫓겨가고 태자는 진노현으로 축출됐다는 내용이 담긴 고려사 일부.
의종 24년 9월 기묘일 왕은 단기로 거제현으로 쫓겨가고 태자는 진노현으로 축출됐다는 내용이 담긴 고려사 일부.

'님을 그리워하여 울고 있더니 접동새와 나와는 비슷합니다그려. 아니며 거짓인 줄을 지새는 새벽달과 새벽별만이 아실 겁니다. 죽은 혼이라도 임과 한자리에 가고 싶습니다. 아~ 어기던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과시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말짱한 말씀이었구나. 죽고만 싶은 것이여. 아~ 임께서 벌써 저를 잊으셨습니까. 맙소서 임이시어, 돌려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 정서 '정과정곡' 中에서

고등학교 국어시간이면 배우는 정서의 '정과정곡' 제작 연대에 대해서는 여전히 견해가 엇갈린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도 이 고려가요와 고려사의 해설을 비교해 의종 5년, 작가 정서가 의종의 아우를 추대하려는 음모에 가담해 동래로 귀양 간 이후 상당기간이 흐른 어느 시기에 임금의 소환을 기다리며 지은 게 아니겠냐는 추정만 할 뿐이다.

국어 시간에 배울 만큼 고려사의 중요한 작품 안의 주인공인 '의종'은 거제 둔덕 우두봉에 3년 동안 머물다 복위를 꿈꾸며 경주로 떠났다. 의종이 떠난 그 자리에는 유배 당시 함께 온 백성들이 남아 있었고 그들은 거제에 고려의 역사를 남기게 된다.

둔덕면 거림리 산 9번지에 자리 잡은 둔덕기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고려왕이 머물렀던 산성이 현존하고 있다.

둔덕기성은 1974년 2월16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으나 폐위돼 유배를 온 왕이 머문 성이라 해서 '폐왕성'이라 40여년 불리었다. 지난 2010년 8월24일이 돼서야 둔덕기성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국가지정 문화재인 사적 제509호로 가치를 높이게 된다.

신봉근 전 동아대학교 총장 역시 '둔덕(屯德)'이라는 명칭부터 고려의 흔적이라고 밝혔다. 둔덕의 덕은 왕을 뜻하며 둔은 머무르다는 뜻으로 의종이 둔덕에 주둔하면서 덕을 베풀었다는 의미라 해석했다.

둔덕기성 내부 우물
둔덕기성 내부 우물

"둔덕기성, 폐왕의 성일지라도 고려왕실 사료 희귀가치 높아"

둔덕면은 농·어업 지역으로 거제시에서 면적 대비 인구가 가장 적은 지역이다. 동·남부면처럼 자연경관이 수려하다는 수식어보다 둔덕면은 '고즈넉하다'는 게 어울린다.

일부 둔덕면민은 '거제지역에서 가장 낙후됐고, 행정이 가장 관심을 두지 않아 뒤쳐진 동네'라고 날을 세우기도 하지만 '거제에서 가장 자연경관이 잘 보존돼 있고 역사와 문화가 공존한 마을'이라 앞으로 거제의 관광 중심지가 될 거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반대식 거제시의회 의장은 "관광산업을 시작할 때는 타 지자체와의 차별성을 갖고 우리만의 특색을 제대로 살리는 게 중요한데 거제지역은 늘 선도적으로 앞서나가는 타 지자체를 따라가기 바빴다"며 "둔덕은 거제가 국내 유일의 문화적·역사적 관광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자원이 있는 곳"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거제시가 조선산업을 대체할 산업으로 관광산업을 내세우면서도 둔덕기성과 그 일대의 고려사료를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에는 둔덕면민들도 안타까워 했다.

둔덕면 주민자치위원 A씨는 "거제에서 둔덕의 역사를 재발견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래 둔덕에 살아온 어르신들조차 둔덕이 고려의 역사가 묻어나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관심 있던 마을 주민들이 둔덕면지를 만들고 다양한 관광자원 의견을 내서 현재 둔덕과 고려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 의장은 "폐왕이라 할지라도 왕이었던 자가 거제에서 단 3년이라도 머물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폐왕이라도 유배 보내는데 혼자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그를 모시는 신하들과 일가족들도 함께 내려왔다는 추정은 가능하다"며 "섬 사람들과 당시 고려 개성 사람들의 문화와 풍습은 차이가 컸고 특히 왕실 사람들은 차이점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기에 그 문화를 중심으로 고려촌을 복원해 둔덕기성과 고려촌을 '고려'라는 이름으로 관광테마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고려촌 복원과 관련해서는 설계 용역 중에 있다.

둔덕기성을 둘러싼 석벽(사진 왼쪽)과 성내 농성 시 방어용 투석재로 사용된 석환
둔덕기성을 둘러싼 석벽(사진 왼쪽)과 성내 농성 시 방어용 투석재로 사용된 석환

고려촌~거제시립박물관~청마테마파크, 둔덕이 거제 문화관광 중심지로

둔덕면민은 둔덕면의 현실을 극복하고 문화관광의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와 지역출신으로 이뤄진 모임에서 전문 교수들의 강연회를 매년 열어왔다.

둔덕면 출신의 김용철 고려대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는 지난해 10월께 열린 '둔덕, 새로운 문화관광의 고장으로' 강의를 통해 둔덕기성·기성치소·방하고분·안치봉 등의 유적들과 청마테마파크 등 청마관련 인프라 조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옥광석 산방마을 이장은 "산방산과 둔덕천을 따라 술역 해안과 화도에 이르는 아름다운 자연생태계와 둔덕면의 역사 유적과 문화가 융합해 관광자원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옥 이장은 고려촌·청마테마파크 조성과 거제시립박물관 조속한 설립도 중요하지만 이 세 곳의 시설물 모두 둔덕면의 역사와 자연경관이 어울리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복희 거제시의원은 "박물관을 단순히 유물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안주한다면 타 지자체처럼 적자운영을 벗어나질 못할 것"이라며 "주변 자연경관과의 어울림을 기본 틀로 해서 곧 조성될 관광시설물과 조화를 이뤄 궁금해서 갈 수밖에 없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역사가 나열된 것이 아닌 인문학적 차원에서 접근해 사계절 언제라도 관광객을 반길 수 있는 관광지로 거듭나도록 관심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