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남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원
김복남 수필가/거제시청문학회원

어머니는 평생을 농사를 지으면 살아왔다. 벼농사며 콩·고추·옥수수를 재배해 자식들 뒷바라지며 학비까지 도맡았다. 아버지는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았으나 대부분 음주로 다 써버리고 학비며 생활하는 비용은 늘 어머니 몫이었다.

겨우내 퇴비를 만들어 봄에 씨앗을 뿌리고 김을 메는 일이 연속이었다. 여름철에는 풀을 베고 논바닥을 헤매면서 해충을 잡았다. 수확은 미미했지만 그래도 자식들 생각하면 그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해가 또 지나갔지만 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한 해 겨우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나면 돌아오는 것은 고난 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몸은 천근만근이 되어갔고 허리는 자꾸만 앞으로 휘어져 밤이 되면 손님처럼 통증이 찾아들었다. 다행히 자식들은 성장을 했으나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매일 예전에 한 것처럼 호미를 들고 들판으로 나간다. 봄이 되면 쑥을 비롯하여 달래나 냉이를 캐 자신은 먹어보지도 않고 전부 자식들에게 보양식으로 보낸다.

텃밭에는 상치며 쑥갓·고추·옥수수·가지·오이… 등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잔뜩 심어뒀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자식들을 위해 제대로 돤 음식을 준비해서 먹이는 게 언제나 소망이다. 이웃이나 친척들이 준 생선들은 줄로 꿰어 처마 밑에 달아 놓고 언제 올지도 모르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 돼 버렸다.

명절이 되면 자식들은 물론 손주들에게 줄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추며 마늘·파를 내다 팔아 한두 푼씩 모아 고스란히 다 주어버린다.

어머니는 늘 그랬다. 특별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손주며 자식들이 눈에 들어와 제대로 입으로 가져가는 것조차 못하고 수저를 놓곤 한다.

눈에 넣어도 늘 부족한, 바다 보다 던 넓은 마을을 늘 품에 안고 사는 어머니다.

그래도 이 텃밭은 농사지어 학비며 생활비를 마련했던 추억과 자식들에 대한 생각을 이어갈 수 있어 예전에 농사짓는 만큼이나 열정을 바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나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힘들게 생활 했던 그 시절들이 고스란히 텃밭에 와 있다.

어머니는 텃밭으로 인해 다시 자식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로 인해 손주들을 그리게 하고 그들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매체가 되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텃밭으로 나가면 어느새 또 몇 개 더 가지가 달렸다. 마치 자식들이 가지나무에 달려 있는 것처럼 자식들 이름을 불러 본다.

어머니는 그 가지를 딸 수가 없어 돌아 선다. 자식들 이름 한번 부르는 것으로 배가 불러 온다.

그렇게 속만 썩이던 남편도 텃밭에 서 있다. 그래도 자식들 아버지로서, 가정의 기둥으로서 존재했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다.

텃밭은 자식들·손주 그리고 남편까지 와서 꽃을 피우고 있다. 어머니 텃밭은 자식들, 손주들이 이어갈 것이다. 어머니 그 깊고 넓은 사랑도 이 텃밭에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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