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인천공항을 가다 영종대교를 지날 무렵이면 이따금 황홀한 광경을 목도하곤 한다. 붉은 융단이 펼쳐진 별천지다. 그야말로 질펀한 갯벌이다.

영종도의 갯벌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딴 세상이다. 꾸불꾸불 냇물이 흐른 흔적이 우주의 한 자락처럼 신비롭다. 거대한 파충류가 배를 끌며 바다로 들어간 흔적 같기도 하다. 평소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건만 썰물 때만 무슨 조화인가. 썰물 때에 바닷물이 바다 복판으로 숨바꼭질하면 새로운 땅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가 품은 '생명의 땅'이 갯벌이다. 갯벌은 갯가, 바닷가의 넓은 벌판이란 뜻이다. 퇴적물이 펄로 된 곳은 펄갯벌, 모래로 된 곳은 모래갯벌, 펄과 모래, 작은 돌 등이 섞여 있는 곳은 혼합갯벌이다.

밀물 때는 물속에 잠기지만 썰물 때에는 민낯이 드러난다.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완충 지대로서 각종 염생식물·바닷새·어패류의 서식지와 산란장을 제공한다. 전체어획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는 보고이다. 자연재해와 기후 조절의 기능이 있고, 특유의 경관으로 관광사업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 서해안은 해안선의 출입(出入)이 심하고 지형적 특성으로 조차(潮差)가 크다. 총 갯벌 면적의 83%가 서해안 지역에 분포하여 캐나다 동부해안, 미국 동부해안과 북해 연안, 아마존 강 유역과 더불어 세계의 5대 갯벌로 꼽힌다.

삼면인 바다인 우리의 갯벌은 면적이 약 2500㎢에 달한다. 서울 면적의 6배에 해당한다. 이런 갯벌에는 720여 종류의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간다. 갯벌 생물은 제각기 좋아하는 먹이가 달라 갯벌의 종류마다 살아가는 생물의 종류도 다르다.

갯벌엔 끈질긴 염생식물이 자란다. 그런가하면 갑각류인 게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조개류도 많다. 갯벌이 조개들의 고향이다. 고동류도 대개가 이곳에서 서식한다. 갯벌에는 갯지렁이 종류가 굴을 파고 산다. 바닷새도 이곳에 모인다.  갯벌, 그 안에서는 수많은 생명들이 쉴 새 없이 먹고, 이동하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이어 가고 있다. 뭇 생명이 펼쳐가는 삶의 터전이자 자연의 보고인 갯벌, 세상에서 낮고 깊숙한 그곳에 맨발로 걷고 싶다.  

나는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감수성이 예민한 유, 초, 소년기를 갯벌을 친구삼아 자랐다. 그래 갯벌은 나의 고향이다. 이곳의 바다생물은 그래서 더욱 친근하다. 일상에서 벗어나 확 트인 갯벌을 바라보면, 온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고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의 이야기가 평화롭게 들린다. 최근에 이 갯벌이 재조명되고 있다. 갯벌은 하나 뿐인 아픈 지구를 치유하는 역할도 한다. 갯벌은 연안의 침식을 막는 완충제 역할도 거뜬히 해 낸다. 바다로 유입되는 오염물질을 정화시킨다.

2014년에 발표된 '지구생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전 세계 척추동물의 수가 50% 이상 감소했으며, 현재 동물 종의 약 3분의1은 멸종위협을 받고 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기후변화이다.

최근의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 의한 지구온난화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90% 이상이며, 주요원인은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 때문이다. 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서 발표한 결과이다.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길은 소비하는 화석에너지의 양을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저탄소기술을 통해 나머지 감축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에너지를 절약해야할 때다. 산업공정에서 배출원을 재정비해야 한다. 육상의 산림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배기가스를 정화해가야 한다. 그런데 산림자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바다에서 온실가스 흡수원을 발굴해야 한다. 여기에 '블루카본' 분야가 중요하다. '블루카본'은 갯벌과, 연안의 식물(염생식물) 및 퇴적물 등의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카본)를 말한다. 세계적으로 풍부한 갯벌을 보유한 우리는 '블루카본' 분야에 잠재력이 있다. '블루카본' 분야에서 우선과제는 갯벌 복원이다. 우리의 갯벌은 197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간척 사업 등으로 면적이 20% 이상 줄었다.

이제 복원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갯벌에 사는 염생식물들이 탄소를 흡수함으로 대기온실가스 저감역할을 해 낸다. 갯벌에서 혹독한 생명을 이어가는 염생식물들이 하나 뿐인 지구를 지킨다니 놀라울 뿐이다. 예사로 보아 넘기기에는 자연 하나하나가 어찌 경이롭지 아니한가.

갯벌의 가치를 생각한다.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귀한 것 아니랴. 고향의 바닷가, 갯벌에서 염생식물을 살피며, 조개를 잡고 고동을 잡으면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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