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날 풍습은 지방마다 다르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공통된 것이 있다면 방이나 마당·부엌·외양간·변소 등 집안 구석구석에 밤새도록 불을 밝혀 놓고 잠을 자지 않았다. 그래야만 잡귀의 출입을 막고 복을 받는다는 도교(道敎)의 영향으로 생긴 풍속인데 이를 수세(守歲)·제석(除夕)·제야(除夜) 등으로 불린다.

지금은 이런 습속이 거의 사라졌지만, 나이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말을 듣고, 쏟아지는 졸음을 참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이 때는 잠에 이길 장사가 없다. 견디다 못해 잠든 아이의 눈썹에 어른들이 하얀 밀가루를 발라 놓으면,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정말 눈썹이 센 줄 알고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지 않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양괭이라 부르는 야광귀(夜光鬼)가 신발을 훔치러 오기 때문이다. 야광귀는 맨발 귀신이라서 섣달그믐 밤에 나타나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제 발에 맞는 신이 있으면 신고 달아난다. 이때 잃어버린 신발주인은 병을 앓거나 재수가 없다고 여겼다. 야광귀는 발이 자그마해서 주로 어린 아이들의 신발을 훔쳐가기 때문에 특히 아이들 신발을 꼭꼭 잘 숨겨 놓아야 한다. 신발을 훔쳐가지 못하게 하는 비법도 있다. 문 앞에 구멍이 촘촘한 체를 걸어두면 된다. 야광귀는 뭐든 세는 것을 좋아하지만 세다가 잘 잊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체 구멍의 수를 세다가 잊어버리면 다시 세고, 또 세다가 잊어버리면 다시 세고,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새벽닭이 울어 미처 다 못 세고 가버린다고 한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온 가족들이 잠을 자지 않기 위해 밤새도록 화롯가에 둘러앉아 옛날이야기를 하거나 윷놀이를 하면서 졸음을 쫓으려 애썼으며, 남자들은 망년주(忘年酒)를 마시면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바느질하던 것은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이날 끝내야 하고, 먹다 남은 음식도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밤을 새우는 가족들이 늦은 밤에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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