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봉은 사등면장/거제시청문학회 회장
공봉은 사등면장/거제시청문학회 회장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고개 넘어 또 고개 아득한 고향
저녁마다 놀지는 저기가 거긴가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불면서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윤석중 작사·한용희 작곡의 '고향땅'이라는 노래다.

어렸을 때는 집집마다 소를 한두 마리는 키웠다. 주된 목적은 농사일을 위해서였고, 살림밑천으로 삼기도 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이면 소를 먹이러 가는 것이 일과였다.

소를 먹이러 갈 때는 혼자서가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갔다. 소의 고삐를 풀어버리기도 하고 귀찮을 때는 두 개의 뿔 사이로 고삐를 둘둘 감아서 산으로 보내버리고는 신나게 노는 것이었다.

보통 무덤이 여러 개 모여 있는 장소가 아이들의 단골 놀이터였는데 비석치기, 달리기, 씨름도 하였고, 가끔씩 각자 역할 분담을 하여 가까운 논밭에 심겨진 밀이나 보리, 고구마 등을 구워먹기도 하였다.

한동안 신나게 놀던 아이들은 서산마루에 해가 지려고 하면 각자의 소들을 찾기 위하여 산으로 들어가는데, 운이 좋을 때는 소들이 무덤으로 내려오거나,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서는 소가 스스로 집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여름방학의 그 날은 마을에서 오리정도 떨어진 사기장골로 비슷한 또래의 칠팔 명이 소를 먹이러 갔다.

해가 지려고 하는 것을 보고 놀이를 멈추고는 소를 찾아서 산으로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앞으로 엎어졌는데 낫으로 베어낸 손가락 굵기의 뾰족한 소나무 그루터기에 정강이 앞부분을 찔렸다.

흐르는 피를 보는 두려움과 아픔까지 겹쳐서 울음을 터드렸고, 다른 아이들도 모여 들었다. 누군가의 제안에 의하여 쑥 잎을 뜯어서 짓뭉개 가지고 상처를 싸매었다.

일행 중에 우리들보다 열댓 살 많은 추 씨가 있었는데, 말하는 것이 서툴고 행동도 이상하여 동네에서는 약간 바보라고 놀림을 받고 있었다.

발목의 통증도 심하고 걷기도 힘들어서 아저씨의 등에 업혀서 집으로 왔다. 논둑길과 신작로를 따라 줄을 지어서 소를 몰고 오는 아이들의 뒤편으로 서산마루에는 노을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아저씨의 등은 넓고도 포근했다.

지금도 오른쪽 정강이에는 상처의 자국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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