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곧 설이 다가온다. 온 나라가 너도나도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전쟁으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우선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표 예매와 기차표 예매부터 난리가 난다. 귀소본능의 발로가 아니랴.
미국의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 교수가 펴낸 '귀소본능'이 화제다. 저자는 곤충생리학과 동물행동학 분야의 주목받는 저작을 잇달아 펴내 자연사 부문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생물학자다. 생물학적 관찰과 연구에다 철학적 사고까지 보태 잘 엮어낸 책이다.

두루미와 물고기·곤충·새·양서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들의 집과 귀소본능에 대해 다룬 이 책은 저자가 버몬트 대학 교수직에서 퇴임한 뒤 고향 메인주로의 귀향을 꿈꾸고 있었던 시절 집필했다. 강단에서 퇴임한 학자가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낸 메인주의 숲으로 되돌아가길 소망하면서, 귀소성과 관련해서는 동물무리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용어만 다를뿐 별반 차이가 없다는 자각과 깨달음을 얻게 됐고, 이런 깨달음이 곧 펜을 다시 드는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적인 질문은 '우리는 왜 집(고향)으로 돌아가는가'이다.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1만㎞에 육박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밤낮을 날아가는 큰뒷부리도요는 이동 과정에서 체내에 저장된 에너지를 남김없이 소진하고 근육과 소화관을 비롯해 내장기관에 이르기까지 뇌를 제외한 모든 신체기관이 손상돼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수많은 철새는 왜 이런 고행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비행을 하는 걸까. 저자는 다양한 동물들의 회귀방법과 함께 그토록 돌아가고자 하는 '집'은 그들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덧붙인다.

자신이 어디에 있고,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찾을까. 새들은 낮에는 태양을 나침반처럼 활용하고, 밤에는 별자리를 본다고 한다. 휘파람새는 실험에서 플네타륨(별자리를 투영시켜 보여주는 장치)으로 보여주는 별자리에 따라 방향을 달리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유리멧새가 북쪽 하늘의 별을 이정표로 삼는다는 것과 이들이 학습을 통해 별자리를 분간하고 방향을 추정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심지어 새들은 중력 방향에 대한 지구 자기장의 방향 차이를 감지해 위도를 알 수 있고, 지구자기장의 이미지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이 단순한 생물학적인 사실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들의 귀소본능을 다루다가 어린 시절 독일에서 살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가정의 저자는 유년시절 처음 정착했던 메인주의 농장과 가족사, 그리고 퇴임 후 꿈꾸는 귀향 얘기 등을 슬쩍 끼워 넣었다.

생물들의 이주와 집짓기, 귀향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저자의 세밀하고 집요한 탐사의 기록인 동시에,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한 철학적이고 인문적인 해설서로 읽히는 건 그래서다.

저자가 들려주는 생물들의 귀소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자꾸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건, 풍부한 생물학적 지식을 풀어놓다가 슬쩍 인문적으로 변주해내면서 보여주는 저자의 깊은 통찰력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생물들이 집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 대한 이야기들은, 때로 삶의 태도를 묻는 중의적인 질문으로 들린다.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생물들이 제집으로 돌아가는 시작 지점이 내가 어디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아는 데서 출발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저자가 내린 결론에 따른다면 '우리는 자신이 어디쯤 있는지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어디 있는지 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책은 돌아갈 집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행복, 치유의 본능인 귀소의 가치를 가르쳐준다. 저자가 끈질기게 관찰하고 기록한 수많은 생물의 놀랄만한 사례를 통해서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귀소본능'이 있다는 결론이다.

"내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이은상의 '가고파')

어딜 가나 '우리 집'이 제일 좋고, 명절이면 고향으로 향하는 게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기억과 감정을 갖는 능력은 인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동물은 우리에게 없는 특정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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