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칼럼위원다대교회 목사
김수영 칼럼위원다대교회 목사

오래 전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진학하려고 할 때에 거창고등학교가 전인교육을 시키는 참 좋은 학교라고해서 거창고등학교를 탐방한 적이 있습니다. 교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채플실에 들어갔는데 제 눈에 확 들어온 글귀가 있었습니다.

'직업선택의 십계'였습니다.

①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②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③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④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⑤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⑥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⑦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⑧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⑨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⑩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저는 이 글을 보면서 왜 거창고등학교가 저 거창골짜기 시골에 있는 허름한 작은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전국의 수재들이 모여드는 그런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나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됐으며, 아직도 '내가 잠든 동안에도 경쟁자들은 공부하고 있다'는 식의 비교육적인 급훈이 걸려 있는 여느 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학교로, 저런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니 거창고 출신들 중에 인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거고의 직업선택의 십계를 보면 학생들이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출세해서 부자로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뜻있고 가치있는 인생을 살기위해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오늘 우리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염려하며, 그걸 위해 공부하고 땀을 흘리며 사는 사람들이지요. 생존만을 위해 사는 사람은 생물학적 인생이요, 동물적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은 그렇게 사니까 말입니다.

두 번째는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라" 하시면서 하나님이 왜 나를 이 땅에 존재케 하셨는지, 그 뜻을 깨닫고, 그 뜻과 그 의를 이루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선택의 십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을 다퉈 모여드는 곳은 절대로 가지 말고 어려운 곳, 아무도 가지않는 곳, 사회적 존경같은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곳, 즉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고, 왕관이 아니라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자기 나름의 창조적인 인생을 살면서 사람답게 가치있게, 의미있게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인생이 뭔 줄 아십니까? '밥 먹고, 소화시키고, 똥싸고, 그 에너지를 가지고 일하다, 죽는 게 인생'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매일 그렇게 사니까요.

그런데 그 일이 어떤 일이냐가 중요합니다. 생존을 위해서 하는 일인지 아니면 사명을 위해서 사는 일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사람됨의 가치가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는 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하늘과 땅 차이요, 천국과 지옥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은 짐승처럼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출세하고, 부자로 사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생존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사명을 위한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람이 사람되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한 농사를 사명의 인생으로 바꾸어 산 위대한 농부가 계십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한 김용기 장로입니다.  옛날 가나안 농군학교의 교육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먹기 위해 먹지 말고, 일하기 위해 먹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식사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장로님은 단순한 농사꾼이 아니었습니다. 농사를 통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일깨워주는 뜻있는 훈련 장소를 세워 하나님 나라를 펼치신 분이시지요.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혹 생존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