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미 수필가

김영미 수필가
김영미 수필가

서울에서 거제로 내려오는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지나는 길에 누군가가 "품위없이" 하며 맨 뒷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있는 아줌마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내가 앉아야 할 좌석이 맨 뒷자리였는데 세 사람의 아줌마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퍽 친한 일행으로 보였다.

"여기는 제자리입니다"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멀미가 심하고 같은 일행이라 함께 가고 싶으니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했다. 흔쾌히 양보하고 아주머니가 앉아야 할 자리에 갔더니 옆자리 남자는 먹다 남은 음식을 자리의 포켓에 아무렇게 쑤셔넣어 여간 불결해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그 아줌마가 뒷자리로 도망간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자리를 양보하기로 한 터라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옆자리 남자는 조금 전에 '품위 없이!'를 중얼거렸던 사람이었다. 내가 앉자마자 마치 들으라는 듯 수다를 떨고 있는 세 아줌마의 공중도덕과 품위에 대해 혼자 씨부렁거렸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품위 없다는 말에서 문득 예전 산행 때의 일이 생각났다. 일일산행은 보통 5시 정도에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날도 그 시간쯤에 차에 올랐다. 평소 알고지내는 동생과 자리를 같이 했다. 산행을 오랜만에 해서인지,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기분이 좋았던가 보다. 동생과 안에서 소곤거리며 얘기를 했다. 자정 무렵쯤 되면 잠이 쏟아져 눈을 붙이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잠에 들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줌마, 그 좀 조용히 하소" 하는 신경질이 한껏 묻어난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같은 동호회 회원으로 평소 언니·동생하며 지내는 사람이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초면도 아닌데, 저렇게 큰 소리로 말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바로 옆자리에 있었으니. "잠이 부족하니 좀 조용히 해 달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휴게소에서 만났을 때에 아무 스스럼없이 나를 "언니" 라고 부르며 말을 건넸지만 왠지 서먹함은 감출 수 없었다. 오늘처럼 4시간이 넘는 시간을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는데도 침묵을 지켜야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친구들도 커피잔을 앞에 두고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하는 듯하다. 입은 굳게 닫고 손가락만 움직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이것이 옳은 것일까. 귀는 사람이 얘기하는 소리도 듣고 새소리와 물소리도 들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든다거나 뛰어다니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리라. 그렇지만 모두가 대화의 끈을 놓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드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다.

품위란 무엇일까. 품위는 외모도 아니고 침묵만 지키는 것도 아니고 서로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 해 본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자리에서 일어서서 내릴 때, 뒷좌석에서 나오는 아주머니에게 이 아저씨 기어코 한 말씀 하신다.

"아주머니, 목소리가 참 좋으시네요." 아주머니는 그냥 웃는다. "그래도 차 안에서는 조용히 하셔야죠."

아저씨는 알고 계실까.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잠이 든 아저씨의 코고는 소리가 옆에 앉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을, 어쩌다 한 번씩 코골이를 몰아쉴 때 울리는 그 큰 소리를 차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들으며 왔다는 사실을. 침묵만이 흐르는 고요한 세상을 떠올린다. 어쩌면 나도 그때 더 정중하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정말 품위란 무엇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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