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혜량 수필가
고혜량 수필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생겨나면서부터 경쟁이라는 힘겨운 삶에 놓이게 된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숲 속에 떨어진 작은 씨앗마저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경쟁은 일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놀이는 가위바위보를 통한 차례 정하기로 시작된다. 몇 초만에 판가름이 날 손내밀기에도 고도의 눈치작전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성향과 의도를 꿰뚫어 볼 줄 알아야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서부터 나는 좌절을 맛보게 되는데, 먼저 시작해야 유리한 놀이도 많기 때문이다.

땅따먹기를 시작하기 전 흙바닥에 정성들여 두부같이 반듯하게 선을 긋는다. 네모로 줄그은 선 안에는 자잘한 돌멩이 하나라도 없게 골라내 모내기 할 논처럼 매끈하게 준비를 한다. 내 차례가 되면 엄지손가락을 야무지게 땅바닥에 고정하고, 손가락이 찢어져라 용을 써가며 새끼손가락을 크게 벌려 선을 그었다. 그러나 아무리 용을 써도 내 땅은 늘어날 줄 몰랐고, 해거름녘이 되면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땅들도 빼앗기기 일쑤였다.

고무줄놀이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노래에 맞춰 고무줄 사이를 현란하게 움직였지만, 나는 펄쩍 뛴다는 것이 줄에 걸리기 일쑤였다. 고무줄이 허리까지 올라오면 더이상 내 다리는 그곳까지 올라갈 줄 몰랐다. 신발까지 벗어던지고 물구나무를 서기를 하면서 닿을 듯 말 듯한 고무줄을 발끝으로 아슬아슬하게 채어 넘기는 친구들. 그 놀라운 기술에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했고, 그런 친구들이 부럽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술래잡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꼭꼭 숨어서 나를 못 찾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매번 비켜갔는데 언제나 제일 먼저 들키는 사람은 나였다.

원래 어리숙한 탓이었는지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자신감을 상실했는지 모른다. 뭘 해도 잘 하는 것이 없는 나와는 달리 친구들의 수준은 월등했다. 비슷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자극을 받아 나도 잘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애당초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남을 이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경쟁이란 것에 무감각해졌는가 싶었는데 이런 열등감이 어른이 돼도 어떤 형태로든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가 보다. 그 때문에 순위가 매겨지는 것은 망설여진다. 잘하고 못하고를 두고 다른 사람들 눈에 비춰진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등위가 정해지는 것은 더더욱 싫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무언가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닦으며 노력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다만 그것이 꼭 타인과의 경쟁으로 인한 만족이라면 일등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조바심이 날 터이다. 꼴등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열 번의 일등보다 한 번의 실패가 더 큰 마음의 상처로 남는다. 어쩌면 최고가 되지못한 것에 대한 실망과 좌절에 자존심을 다쳤다고 느끼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꼴등인 사람은 그것을 담담히 인정하기에 때때로 느끼는 느긋함이 있다. 꼴등의 여유와 행복은 나보다 부족하고 불행한 사람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이 아니기에 마음만은 평온하다. 가끔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꼴등의 느긋함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삶의 여유를 찾는 취미만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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