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김철수 거제신문 서울지사장

서울 세종로에 있는 역사박물관을 찾았다.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거리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났다. 양쪽으로 종합청사를 비롯한 최신식 빌딩 숲 속에 위치한 역사박물관은 겨울이어선지 한산하다.

'1950 흥남, 그 해 겨울' 특별전이다. 1950년 겨울, 흥남은 전쟁의 잔혹함, 분단의 비극, 이산의 고통을 압축적으로 말해 주는 공간이다. 흥남철수는 연합군의 값진 희생과 피란민들이 보여준 생명과 자유를 향한 강렬한 의지, 대 탈출 속에 피어난 인간애를 보여주는 아프지만 소중한 역사의 한 페이지다. 전시내용은 1950년 12월 흥남으로 모여들었고, 흥남을 떠났던 사람들의 기록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이 보았음직하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사흘 만인 6월28일에 서울이 함락되고 남쪽으로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를 거듭했다. 수세에 몰린 한국군과 16개국의 군인으로 창설된 유엔군은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가 사령관으로 임명돼 9월15일에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 성공함으로써 9월28일 서울을 수복하고 전세를 역전시켰다.

한국군 1군단은 10월10일 원산을 점령했다. 20일에는 미8군이 평양에 입성했고, 이어 10군단이 동부전선에 투입됐다. 10월 한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다다랐다. 하지만 10월25일 중공군의 전격적인 인해전술에 밀린 한국군과 유엔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도쿄에 있는 유엔군 총사령부는 해상 철수를 결정했다. 철수 작전지는 흥남이었고 목적지는 최후방 부산이었다. 불과 두 달여 만에 전세가 역전돼 북한의 많은 주민들이 피난길에 오르게 됐다. 흥남 부두에 모인 사람은 20만명이 넘었다. 군 병력 10만 명에 피란민 10만명, 차량은 1만7000대가 넘었고, 군수물자도 35만 톤이나 됐다. 철수 대상은 군인과 한국인 군무원, 북한 정권에 처형당할 우려가 있는 민간인으로 한정됐다.

그즈음 10군단 부참모장 5명이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랐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부산에서 올라와 흥남 앞바다에 정박 중이었다.  메러디스 호는 화물을 싣는 화물선이어서 승선 가능한 인원은 선원 포함 60명 정도에 불과했다. 12월22일 저녁에 시작된 승선은 다음날 오전까지 이어졌다. 1만4000명을 태운 메러디스 호는 23일 흥남을 떠났다. 항해 도중 5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 지을 겨를이 없던 선원들은 이들을 '김치 1·2·3·4·5'라고 붙였다.

이미 피란민 100만명을 수용한 부산은 하선이 불가능했다. 라루 선장은 80㎞ 떨어져 있는 거제도로 배를 돌렸다. 지심도와 장승포 등대 사이에 정박한 배에서 군중 1만4004명이 장승포항에 내리는 사이 여자들의 장막 속에 또 한 생명이 태어났다. 그가 '김치5'다. 사망자·실종자·부상자 한 명 없이 새 생명 다섯이 태어났다. 피란민 1만4000명을 전시에 구출해 낸 기적의 항해가 비로소 막을 내렸다.

미국 정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출을 한 기적의 배'라고 했다. 이 배는 기네스북에 '단일 선박으로 최다 인원을 구출한 선박'으로 등재됐을 뿐만 아니라 메러디스 빅토리 호와 선원들은 1960년 6월24일 미국 정부로부터 '용감한 배(Galant Ship)' 훈장을 받았다.

1950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였다. 1만4005명의 피란민을 싣고 2박3일의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12월25일 장승포에 입항한 것을 두고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전시회의 마지막 부분에 전시된 'Kimchi-5'인 이경필 원장의 첫돌 사진과 가족사진·졸업증서·수료증 등을 살펴봤다. 친구를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친구의 애환을 유추할 수 있었다. 부모가 피란민으로서 장승포에서 고생했던 과거사와 피란선 에서 태어난 자신의 과거를 얘기 한 적이 없었다.

이번 특별 전시회는 단순히 적군을 피해 흥남을 철수하는 군인과 주민수송 작전을 회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의 슬픔과 희망, 아픔을 그려내고 있었다. 숭고한 인류애와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광복 70년 특별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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