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는 알콜상담센터 설치 불가능
중독자 자조모임 통해 생활 변화 꾀해

지난달 27일 거제시보건소 2층 회의실에서 만난 알콜중독자 자조모임 회장 A(45)씨는 실제 나이보다 더 많아보였다.

알콜중독 치료는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는 A씨는 한때 심각한 알콜중독에 빠져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잃었다.

그는 "흔히 하는 얘기로 내가 술을 안 먹었으면 집을 샀다. 어릴 적 아버지가 수산업에 종사했는데 조업을 다녀오면 손에 쥔 돈을 어느 정도 술에 써야 하는 분위기였다. 술잔도 쓰지 않고 밥그릇에 술을 드시곤 했다"며 "성인이 돼서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20대부터 술을 많이 먹었고 필름이 끊기기 시작했다. 30대가 되니 손이 떨리고 눈매가 매섭게 변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A씨는 점차 기억이 나지 않는 블랙아웃(필름 끊기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술을 마시면 지인들에게 전화해서 횡설수설하고 술이 깨면 오히려 대화가 어렵고 항상 눈이 충혈됐다. 이른바 술이 술을 먹는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그는 "금단증상이 오면 불안하고 식은땀이 났다. 관절이 약해져 의사에게 혼나고 수술했는데 달라지지 않았다. 가족들이 힘들하고 동생도 형 취급 안 해줬다"며 "술친구들은 내가 돈이 없으면 냉정하게 돌아섰다. 차라리 입원해서 통제 상태에 놓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는 김해에 있는 정신요양병원에서 13개월간 입원했다. 퇴원하고는 부산으로 알콜중독자 자조모임을 다녔다. 모임을 나가면서 피해를 줬던 사람들에게 사과도 했다.

알콜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A씨는 중독자 자조모임인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이하 AA)' 거제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직업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면 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예전에 하던 조선업을 중단하고 서비스업을 선택하기로 생각을 굳혔다.

원래 자조모임을 사등면 21세기한일병원에서 했는데 장소가 멀어서 거제시보건소로 이동했다. 21세기한일병원에는 알콜중독 환자가 50명 이상 치료받고 있다.

알콜중독자 자조모임은 회원들이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가는 특성이 있다. 거제모임은 통영·고성·부산에서 많이 오고 거제에서도 섬 밖으로 많이 간다. 거제모임 회원 중에서 울산에서 오는 사람도 있다.

AA는 현재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께 한다. 자세한 문의는 거제시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로 하면 된다. 타지역에서 얼마든지 올 수 있고 계속 오라고 하지도 않는다. 대화내용은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된다.

AA는 상급 종합병원이 없고 알콜상담센터를 만들 수 없는 거제에서 중독자들에게 아주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알콜상담센터를 설치하려면 관련 전문가가 일해야 하는데 대학병원 등 큰 병원에서 전문가가 쉽게 올 수 있는 창원·김해·양산은 가능하지만 거제는 어려운 상황이다.

거제시보건소에서는 알콜상담센터가 없는 만큼 AA를 활성화하고 다른 절주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또 자살에 이르는 사람들 상당수가 알콜중독이 선행되므로 자살과 함께 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거제시보건소 관계자는 "양대 조선소와 연계해 알콜중독 및 자살방지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또 행정 공무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하고 이통장 중에서 자살지킴이를 양성한다"며 "벽화 봉사단체에 '일상의 한마디가 일상을 바꿉니다'라는 문구를 그리도록 부탁해 시민 모두의 관심을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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