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개봉된 '내 사랑 싸가지'라는 영화가 있었다. 백일 기념일에 연하 남친에게 채이고 돌아오던 하영(하지원)이 바닥에 있는 캔을 발로 뻥 찼는데 그게 하필이면 싸가지 형준(김재원)의 외제차를 상처내고 만다. 하영은 수리비 300만원을 갚기 위해 하루 3만원씩 100일간의 노비계약에 서명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영화다. 나중에 수리비가 불과 만원이라는 것을 알면서 사건을 얽히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형준을 싸가지라 부르지만, 하영은 형준을 주인님이라 부르는 설정이 재미있다.

'싸가지'는 '싹+아지'로 이루어진 말이다. 식물이 움트기 시작하는'싹(芽)'에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등의 '작은 것'을 의미하는 접미사 '-아지'가 결합되었다. 따라서 어원적 의미는 '싹의 새끼', 즉 '아주 작은 싹'이라고 할 수 있다. '싸가지'의 본디말은 '싹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싹수를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라고 풀이하고 있다.

'싹수'는 긍정적 의미를 준다. 그럼 '싹수가 노랗다'고 하면 앞으로 잘될 가능성이나 희망이 애초부터 보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쓰이니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싹수'라는 말 자체에는 부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싹수'를 '싸가지'로 바꾸었을 때에는 말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싸가지 없다' '이런 싸가지를 봤나' '저, 싸가지' '왕싸가지' 등등 좋은 뜻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싸가지는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 버릇없는 사람, 막대 먹은 사람, 무개념의 사람, 어른한테 함부로 대들고 품행이 불량한 사람을 일컫는다. 요즘은 아예 '싸가지'라는 단어 자체가 '싸가지 없다'와 동일시되었다.

최근 어느 당 대표의 싸가지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싸가지가 인터넷 검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싸가지 없는 사람이 참 많다. 그렇다고 상대를 향해 대놓고 '싸가지 없다'라는 말은 잘하지 않는다. '싸가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싸가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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