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 / 수필가

윤석희 수필가
윤석희 수필가

파헤치고 부수고 깨고 난리도 아니다. 포클레인에 동강나는 고목이며 짓밟힌 화초들의 울음  소리가 귀를 찢는다. 주민들이 모여 담소하던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곳을 지날 때면 흐뭇했었다. 아름드리나무가 듬직하고 철철이 꽃들이 화사했다. 그늘속에 나무탁자와 돌의자가 오순도순 정다웠다. 아파트답지 않은 야트막한 기와담장도 운치 있었다. 어른과 아이들·이웃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차를 나누며 깔깔댔다. 놀이도 했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가끔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돌 의자 하나를 슬그머니 차지했다. 한나절 한유하다 객이 아닌 표정으로 넉살좋게 웃으면 어디선가 "새로 이사 오셨어요. 몇 호세요" 물어온다. 주민이 아니라고 다시 웃어주면 그만이다. 내치지 않는 푸근함에 하루가 행복했다.

들쑤셔 논땅에 시멘트가 발라지고 아스팔트 포장을 했다. 다음날 줄이 그려지더니 차들을 들앉혔다. 보란 듯 자리한 차들이 그곳의 주역이다. 주차공간으로 휴식처가 사라졌다. 우리 스스로 내준 것이다. 인간의 쉼터가 필요치 않은 게 아니고 우선순위로 밀린 것이리라. 지날 때마다 외면을 했다. 볼썽사나워서만은 아니다. 마음 가는 소박한 공간이 그리웠다. 결국 우리의 선택이 삶을 황폐화시키고 만다.

스웨덴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읽었다. 저자가 산업사회발전으로 상실되어가는 인간본성을 찾아 나선 곳이 인도 히말라야 자락의 라닥이다. 수십 년 그곳에서 살았다. 극심한 추위와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라닥인들의 지혜에서 회복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자연 친화적인 삶속에서 우리의 내일을 찾고 있다. 단순하게 옛것을, 옛사람들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인류 생존의 미래를 고민하며 그녀가 내린 답이 오래된 미래다.

중국의 핑야오 고성엘 갔다. 옛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역이다. 성안의 풍경과 생활상이 흥미롭고 아름다웠다. 관광객이 들끓는다. 그러나 예정대로 머물지 못했다. 숨쉬기가 어려웠다. 두통을 견디지 못하고 일정을 당겨 도망쳤다.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곳이었다. 연탄·석탄의 배출가스가 성곽 밖으로 빠지지 못해 공기 중에 자욱하다. 게다가 관광객 수송차량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혼란스러웠다. 처절함에 소름이 돋았다.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는 자괴감. 우리가 만들고 개발 해낸 것들에게 생존을 위협받고 영혼마저 말라가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호지여사의 주장대로 오래된 미래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 자연으로 되돌리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겠는가. 인류가 일궈낸 문명을 포기하면서, 누리며 사는 이기와 편리를 내버리진 못할 것이다. 허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세상을 목도하고 말았다.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위기다. 생존이 위태롭지 않은가.

그렇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무 한그루라도 더 심고 가꾸어야 되나. 차를 버리고 두 발로 걸어 다닐까. 소비를 줄이며 도시인의 삶을 포기한다면. 개개인의 실천이 모여 이뤄낼 것은 무언지 궁금하다.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순서 바꾸기는 분명 필요하다. 발전의 속도를 조정하며 자연과 환경을 우선해야겠다. 우리 모두가 더는 황폐해지지 않을 순 없을까. 내가 살고 내일 아이들이 살아야 할 삶의 터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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