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子路)는 공자(孔子)의 수제자였다. 무인이라 성격이 직선적이고 급했다. 위나라 왕위계승문제로 정변이 났을 때 자로는 쫓기는 몸이었다. 다들 후일을 기약하자고 했지만 자로는 지조를 앞세우며 도망가지 않았다가 점령군에게 잡혀 갓이 벗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자로는 "이보게, 군자는 죽더라도 갓을 벗지 않는 법이라네(君子死而冠不免·군자사이관불면)"하며 떨어진 갓을 다시 고쳐 쓰고 죽음을 맞이했다.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일반적으로 서양 사람들은 사람 앞에 나설 때 모자를 벗는다. 그러나 조선시대 선비는 갓을 벗기는커녕 더 단단하게 매고 나아가는 것이 예절이었고, 임금 앞에서도 갓을 쓴 채 엎드려 절을 했다. 갓은 햇빛 가리개나 보온 같은 실용성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 신분계층이 확실했던 조선시대 남자 나이 열다섯 살이 지나면 관례(冠禮)를 통해 갓을 씀으로 해서 어른으로 인정받는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모자를 벗고 안 벗고는 문화에 속한다. 유럽 성당에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느님의 뜻을 막는다고 여기기 때문에 모자를 벗어야 하지만, 미국 교회에서는 정장한 여자는 모자를 쓴 채 예배를 본다. 모자는 의상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군인이 제복을 입었을 경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모자를 벗지 않고 거수경례를 하지만, 식당이나 장교클럽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모자를 벗는다.

1930년대 우리나라 남자들이 모자 없이 거리에 나가면 이상한 사람으로 볼 정도였고, 요즘은 명절에 한복을 입고 맨머리지만 1940년대에는 한복과 맨머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차림이었다. 모자가 자유롭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유행이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일 부산에서는, 나폴레옹이 1800년 마렝고 전투 때 직접 착용했던 '이각모 전시회'가 있었다. 당시의 신분제도에서는 단 1%의 가능성도 없었던 황제의 자리에 오른 시골 섬소년의 드라마틱한 일대기를 우리 청소년에게 알려주려는 기획의도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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