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 부의장

"나이가 들수록 고향은 어머님의 품속 같은 존재로 평안함과 마음의 안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고향 떠나 온지 50여년이 지났지만 고향을 생각하면 늘 마음 한 구석에 어머님의 품속 같은 따뜻함이 존재하고 고향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에는 나도 모르게 엔도르핀이 솟아납니다."

지난 2015년부터 올 3월까지 재부거제향인회 회장을 지냈고 부산에서 시의원 4선을 지낸 이영(72) 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산지역 부의장은 자신에게 고향이 주는 의미로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고향은 바꿀 수 없다"며 고향에 대한 진한 애향심을 강조했다.

이영 회장은 거제 하청면의 가난한 집안 5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지난 1958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부산 영도로 터전을 옮겼다.

어린시절 가난한 집안 살림을 자신의 힘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열정이 일찍 철이 들게 했고 사회생활도 일찍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가난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낮에는 신문 판매원을 하며 중학교를 겨우 마쳤다. 그러나 아래로 4명의 동생들 생각에 고등학교 진학은 잠시 접고 서울로 상경해 2년간 냉차, 아이스크림, 화장품 외판원 등으로 돈을 모아 부산에서 고등학교와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이 회장이 정치인을 목표로 정하고 대학에서 이론을 배우고 나서 바로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첫 직장을 선택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장사를 할 때 소위 여공이라고 말하는 누나들과 또래의 여자들이 주요 고객이었기에 자주 만나 그들의 애환과 눈물을 보았고 어린 마음에도 자신이 꼭 정치인이 돼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는 결심이 정치인의 인생을 걷게 했다"고 말했다.

이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회장은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1년 부산시 시의원에 출사표를 내고 당선한 이후 내리 4선을 지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유치위원회 간사와 2005년 제13회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담 유치위원장을 맡아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어려움에 처한 부산 경제를 일으키고 도시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긴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금 거제가 조선 산업 불황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렵다는 언론 보도를 볼 때마다 자신이 직접 나서 어떻게 해줄 수는 없어 안타까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 거제 정치인과 행정이 힘을 합치기만 하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다른 것 멀리 볼 필요 없이 거제는 조선업으로 특화된 도시다. 세계적인 기술력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장점을 활용해 과거 인력 집약적 조선업에서 벗어나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역점을 두고 명분과 논리를 개발해 정부에 건의한다면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천혜의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는 것을 활용해 필요한 기반시설이나 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형 국책사업을 끌어들여 조선과 해양관광도시 거제를 만들어 나간다면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시민들이 고통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회장은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역사적인 도시 거제는 그 옛날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통해 나라를 구한 경험과 전통을 살려 우리나라 최고 살기 좋은 고장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거제의 미래는 시민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정치인과 공무원을 바로 세우고 진실된 마음으로 시민을 섬기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을 수 있는 식견을 가질 때 가능해 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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