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천창수 지세포제일교회 목사

로마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은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한다고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 하는 말이 내게는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걱정하고 아파하는 것인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성도들을 권면하던 바울이었다. 그런데 그런 바울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크게 근심하고 걱정하고 또 괴로워하는 것인가?

바울의 근심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위한 근심이다. 바울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팠다. 하나님 앞에 놀라운 특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스스로 차 버리고 멸망 길로 달려가는 이 백성을 생각할 때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든지 "내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바울의 동족이었지만,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바울의 철천지원수 같은 민족이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할 때에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괴롭히고 박해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 유대인이었다.

태장으로 바울을 쳤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무려 다섯 번이나 때렸던 사람들도 유대인이었다.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도 유대인들이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 결심하고 바울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도 유대인들이었다.

그야말로 유대인들은 바울에게 철천지원수였다. 바울은 이런 유대인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실컷 저주를 하고 욕을 퍼부어도 시원치 않을 유대인들인데, 그런데 어떻게 이런 유대인들을 생각하며 걱정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런 유대인들을 위해서 마음 아파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내어 주셨다.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원수 되었던 자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요 이 땅에서 교회의 씨를 말리려고 뛰어다니던 사람이다. 이런 바울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워 주셨다.

이제 바울이 하나님의 그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니, 철천지원수 같은 유대인들도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기를 죽이려고 돌을 던지고 매질하는 그것보다도, 구원받지 못한 그들의 영혼이 더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많은 특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그 사람들이 불쌍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생각하면서 크게 근심한다. 크게 걱정한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자기 동족들을 생각할 때에 걱정이 되서 잠이 오지를 않는다.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할 때에 가슴이 답답해 온다. 마치 무거운 뭔가가 가슴을 내리 누르는 것 같이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

이 아픔을 안고 바울은 고백한다. 내 형제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내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내 동족이 구원을 받았으면 좋겠다." 라고.

바울이 느끼는 고통, 바울의 이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바라볼 때,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가슴 아파하는 우리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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