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골프를 치다가 공을 잃어버렸다. 그 사람은 캐디가 공을 훔쳐 갔다며 몹시 화를 내었다. 그런데 얼마 뒤 다시 골프를 치다가 풀 속에서 잃어버린 공을 찾았다. 그는 캐디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러자 캐디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선생님은 저를 도둑으로 잘못 보셨고, 저는 선생님을 신사로 잘못 본 것뿐이니까요"

도둑이라 하더라도 의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서양에서는 'Noble Robber'라 한다. 의역하면 '신사도둑'이다. 우리말로는 의적(義賊)이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적 반영웅(anti-hero)을 기대하는 대중심리가 미화되기 십상이다. 한때 의적으로 불렸던 대도 조세형은, 가난한 사람의 집은 털지 않고 부잣집만 털었다거나, 훔친 금품 중 일부를 거지에게 주었다는 소문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교도소 복역 이후 기독교에 귀의하여 갱생한 범죄자의 모델이 됐는데, 일본에서 좀도둑질 하다가 잡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나와 금은방을 털다가 잡히면서 의적은커녕 도둑님이 잡범 도둑놈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콜롬비아 마약왕으로 악명을 떨쳤던 에스코바르는 세계에서 가장 돈 많은 갑부 리스트에 오른 사람으로 그의 명령으로 살해된 사람이 수백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시민들은 그를 '로빈 후드'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마약으로 번 돈으로 빈민층을 위한 학교와 병원을 건설하고, 노숙자들과 거지들을 위해서 무료 급식소를 짓고, 축구팀도 창설하는 등 통 큰 선심을 썼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언론에서는 종자돈 1500만원으로 주식투자해서 무려 400억을 벌었다는 신화의 주인공 박모씨를 소개하면서 '청년 워런 버핏'이라고 치켜세웠다. 버핏 회장은 주식투자만으로 2010년 세계 세 번째 부자가 된 사람이다. 박씨는 수백만 원씩 보육원에 기부하고 대학에 20억 대를 기부하자 그의 기부에 동참하려는 기부자까지 나타나 장학재단까지 설립했다. 그러나 400억을 벌었다는 것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그런 박씨를 '영웅'으로 치켜세웠던 우리 사회의 가벼움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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