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복 시인/수필가
정현복 시인/수필가

연어의 모천회귀처럼 나도 모태인 고향에 돌아왔다. 약관의 나이에 고향을 떠났다가 환갑을 몇 해 앞두고 돌아왔으니 어언 40년만의 귀향이다.

가난했던 어린시절, "왜 하필이면 이 답답한 섬 구석에 태어나 이 고생을 할까?" 하고 내 고향에 대해 적잖은 불만을 가진 적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런 불만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쁨과 즐거움 보다는 고통과 눈물, 한숨이 더 많았던 곳이 내 고향 거제읍내였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나는 어떻게 하면 이 좁디좁은 섬을 탈출해 드넓은 대처로 나가 마음껏 활개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었다.

머리에 쇠똥이 다 벗겨지고 코밑에 수염이 꺼뭇꺼뭇 돋아날 무렵, 나는 나의 존재를 있게 해준 고향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토록 동경해 왔던 육지 상륙에로의 꿈을 이뤘다. 번잡하고 북적대며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타향 땅 부산에서 머리가 희끗해 질 때까지 옆도 뒤도 돌아 볼 겨를 없이 헉헉거리며 생존경쟁이라는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만 했다.

원대한 꿈과 포부를 안고 고향을 떠났지만 40년 타향살이의 결과는 보잘 것이 없었다. 초반에는 순풍에 돛 단 듯 잘나갔지만 하프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결정적인 순간 시련은 나를 절망으로 빠뜨렸다. 절반의 성공에다 절반의 실패였으니 따지고 보면 본전이요,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전장에 나가 패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귀향한 무명용사처럼 나는 금의환향은커녕 계급도 훈장도 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웠던 고향사람 얼굴도 만나고 정겨운 거제사투리도 들을 겸해서 들린 읍내장터에는 아는 사람보다 낯선 사람이 많다.

생활은 구조라에서 하고 있지만 짬이라도 날 량이면 시도 때도 없이 망치재를 넘어 내 어린 시절 추억이 스며있는 거제읍내를 둘러보고 오는 것이 버릇이 됐다. 동산을 출발하여 저수지를 돌아 산성정상에 올랐다가 도론골로 내려오는 산성 둘레길도 걷고, 간덕천 수문을 출발해 3부두와 각산부두, 그리고 2부두를 거쳐 대숲개 곤발네 할머니의 전설이 전해져 오는 죽림포를 한 바퀴 돌아오는 해변 산책길 등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남부럽지 않은 명품건강길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기만 하다. 언제 봐도 싫증나지 않고 보면 볼수록 짠한 감동에 사로잡히는 것이 내 고향 풍경이다. 산과 들·바다의 풍경이 얼마나 평화롭고 서정적이며 소박한지 목가적 이상향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싶다.

우리 거제읍내처럼 산과 들과 바다의 배열과 균형이 이렇게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이 지구상에 몇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거제읍내를 한마디로 자연의 천국이라고 부르고 싶다. 아직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은 탓에 고층건물도, 교통의 혼잡도 없고 매연과 소음이 없어 쾌적할 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가 원형에 가깝도록 잘 보전되어 있어 삶의 질을 높이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기에 딱 알맞은 곳이기에 말이다.

어릴 때 나는 보석같이 빛나는 내 고향의 진면목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지긋해 진 나이에 낙향해 고향살이를 시작한 지금에 와서야 내 고향 거제읍내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축복의 땅임을 재발견하게 됐으니 다행으로 생각한다.

남은 생애를 계룡산처럼 점잖게, 수정봉처럼 맵시있게, 동산처럼 푸르게, 거제 앞바다처럼 시원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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