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뭐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억지나 투정을 부리다가 그래도 안 되면 울면서 패악을 부린다. 보다 못한 엄마가 빗자루 몽둥이를 들고 "이 놈의 자슥이 어디서 땡깡을 부리노"하면서 때리려고 올 때 삼십육계가 상책이다. 엄마도 아이가 도망가 주기를 바란다. 때릴 듯이 다가오지만 어디까지나 겁주는 것이고 실제로 때리고 싶어 하는 부모는 없다. 경상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이 '땡깡'이라는 말을 한 번쯤은 다 듣고 자랐을 것이다. '생떼질하다'가 표준어지만 '땡깡'으로 통한다.

이와 비슷하게 함부로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고 '지랄하네'라고 말한다. 지랄이라는 욕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일본어에도 있다. 곧 덴깡(てんかん)이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을 비하해서 입에 달고 살았던 욕설이 어느 틈에 우리말처럼 굳어진 사례다.

어른들은 '지랄만 빼놓고 다른 재간은 다 배워두라'고 했는데 지랄은 간질(癎疾)로 피하고 싶은 재앙으로 여겼다. 간질이라는 용어가 거부감을 주기 때문에 의학계에서는 뇌전증(腦電症)으로 바꿨다. 이런 어려운 말은 전문가들이나 쓰는 일이고 우리 생활에서는 '생지랄' '개지랄' '지랄용천' '지랄옘병(염병)' 따위의 비속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마구 법석을 떨거나 꼴사납게 날뛰는 것이 지랄용천이다. 용천(涌泉)은 발바닥에 움푹 들어간 곳의 혈자리로 침을 놓으면 엄청나게 아파서 팔짝팔짝 뛰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고, 지랄옘병은 지랄에 장티푸스까지 겹친 것으로 경남 남부지방에서는 '지랄옆구리'라 한다.

SBS 연속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은 한석규의 명대사가 '지랄하고 자빠졌네'다. 감히 근접하기조차 두려운 성군(聖君)을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 놓으려는 작가의 숨은 뜻이다.

얼마 전에 여당대표가 다른 당을 일컬어 '땡깡 놓는 집단'이라고 해 정치판이 요동쳤는데 아무리 화가 나고 격앙됐다 하더라도 '땡깡'이 '지랄'이라는 것을 안다면 듣고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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