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 계룡수필 회원

씁쓸하다. 아니 서글프다. 우리 지역의 전문 레코드점이 결국 간판을 내렸다. 운영난에 허덕이다 업종 변경을 감행했다. 제대로 된 음악 테이프이나 시디를 살 수 있는 유일한 집이었는데.

몇 해 전에도 한번 놀란 적이 있다. 그 상점에서 낯선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따지듯이 물었다. 이 집 어찌 됐냐고. 알 수 없다는 대답에 안타까웠다. 그러나 며칠 후 보란 듯이 맞은편 길가에 간판을 다시 내걸어 환호했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음악 전문가이거나 애호가도 아니다. 자주 그 집에 드나드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한 해에 시디 너덧 개 사는 정도다.

위안소라고 해야 하나. 삭막하고 황량하게만 느껴지는 거리에서 이 앞을 지나면 공연히 가슴이 촉촉해지고 마음결이 고와졌다. 연주회며 발표회 연극 각종 문화행사의 광고판 역할을 하는 쇼윈도의 유리벽에 발길이 오래 머물곤 했다.

어쩌다 비워 있기라도 하면 허전하기까지 했다. 걸을 때는 물론 차를 타고 그 거리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자연 눈길이 가고 마음도 갔다.  덥수룩한 머리의 주인아저씨가 금방 재즈기타라도 쳐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레코드판에서 테이프 시디 칩까지의 변화다. 거센 파도를 몸으로 감당하며 스무 해 넘게 그 분이 지켜온 가게다.

친절하거나 다감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에 관련된 것을 물으면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늘 감사했고 또 흥미로웠다. 모르는 게 없어 보여서다.

더구나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거나 구매를 강요하지 않았다. 자유롭게 드나들고 편안하게 빈손으로도 나올 수가 있었다.

그 곳에서 젊은 학생들을 자주 만난다. 삼삼오오 떼 지어 리듬을 타면서 헤드폰을 꽂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쩌다 중년이나 노인을 만나면 더욱 흐뭇했다. 홀로 꼼꼼히 전문잡지의 목차를 들여다보거나 음악에 취해 있는 모습에서 멋과 향기가 배어났다.

생각해 보니 이 집이 문을 닫는데 나도 일조를 한 꼴이다. 컴퓨터에서 노래를 다운받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디를 구입하고 칩으로 음악을 즐기지 않았나.

발걸음이 뜸해진 지도 제법 된 것이다. 세상의 거센 물결을 뉘라서 막을 수 있을까마는 변화의 요인이 바로 나라는 자각이 섬뜩하다. 레코드점 하나 없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닌가.

물론 시디나 테이프가 비디오 대여점 한 귀퉁이에도 있다. 대형 마트 한 코너에서나 길거리 리어카 속에서도 만날 수는 있다.

그러나 소중한 곳을 잃어버린 허전함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도 그 상점 앞에서 부질없이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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