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순 수필가

▲ 김정순 수필가

박자를 또 놓친다. 서둘러 다음 음표를 찾아 연주하지만 소리가 다르다. 서두르다 코드를 잘못 짚은 탓이다. 연주를 멈추고 다음 마디를 준비하며 잠시 기다려야 하는데 조급증이 일어 서두른 게 화근이다.

한 번 틀리고 난 후 다른 사람 박자에 신경 쓰느라 이번에는 엉뚱한 코드를 짚어 다른 소리를 내고 말았다. 서둘러 코드를 바꾸지만 이미 늦었다. 박자도 코드도 다른 나 혼자만의 연주를 하고 있다.

악기소리에 먼저 반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연주곡을 듣고 맑은 소리가 좋아 관심을 갖게 됐다. 얼핏 봐선 다른 점을 못 느낄 정도로 크기만 다를 뿐 둘이 너무 닮았다. 실물을 보니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배우기만 하면 잘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까지 생겼다.

오래전 피아노를 치다 그만둔 이후로 악기 때문에 마음이 설레긴 처음이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믿고 몇 개월 먼저 시작한 지인들 팀에 합류, 레슨을 시작했다. 첫 레슨이 끝난 후에는 우쿨렐레 연주로 재능기부를 하리란 당찬 목표까지 세웠다. 처음 몇 주는 익혀야 할 코드도 적고 연주법도 비교적 간단해 별 어려움이 없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선생님의 칭찬과 지인들의 도움이 더해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날수록 악보 위에 코드가 점점 더 늘어나고 연주법 또한 다양해졌다. 코드에 신경 쓰다보면 박자가 틀리고, 박자를 신경 쓰면 코드가 틀리고 연주법이 뒤섞이는 일이 이어졌다. 의욕은 넘치고 넘쳤으나 현실은 달랐다.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지 않은가.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건 연습 밖에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처음엔 소음이던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네 줄의 현이 내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기 시작했다. 고개 하나를 겨우 넘고 나니 그보다 더 높은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합주라는 낯선 고개였다.

박자가 빨랐다 늦었다 고무줄 박자인 냥 제 각각이었다. 독주일 땐 나 스스로 만족하면 그만이지만 합주는 개인의 실수가 모두의 연주를 망치게 되니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였다. 연습은 배신하지 않았다. 레슨이 끝나면 팀원들과 남아서 복습을 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기 위한 신호를 보냈다.

하나의 소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자 함께하기 위한 배려였다. 악기도 사람도 함께 있을 때 자기 소리를 크게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서로의 소리에 맞춰 잘 어우러져야 한다. 곡이 만들어지는 틀 안을 서로의 소리를 조금씩 나누어 꼭 맞게 채워 넣을 때 비로소 좋은 합주, 아름다운 연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나 팀이든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조화는 일의 결과로 이어진다. 자기주장, 자기 소리를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여럿이 하나의 소리를 내기 위해 다른 연주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합주가 완성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율을 끝내고 연주를 시작한다. 아르페지오 연주법이다. 네 번째 마디에서 코드를 잘못 짚었다. 손가락을 떼고 다음 마디를 준비한 채 기다렸다 합류한다. 마주보며 박자를 맞춰가는 순간순간 마음도 더불어 서로에게 맞춰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기에 가능한 마주 봄이다. 연습실 작은 공간을 울리는 세 사람의 우쿨렐레 합주가 한 사람의 연주처럼 하나의 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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