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의회 김복희 의원…지역구 출마 고려 안 해정치인 보다 봉사자로 남겠다…봉사하는 삶이 내 숙명

Q. 거제시의회 의원으로서 어떤 각오로 업무에 임하나
= 출·퇴근 시간을 나름대로 정해 일정한 시각에 출근하고 외근하고서도 사무실에 와서 정리하고 퇴근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젊은 시절 형편상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군무원으로 공직자 생활을 3년 해봤다. 다시 공인이 되면서 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시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임기 동안 사적인 계획은 일체 세우지 않았다.

Q.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생각인가
= 내년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출마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시의원으로서 지난 대선에서 한국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결과를 겸허하게 수긍하고, 나 자신부터 반성하는 의미로 주권자 시민에게 참회하겠다. 내가 아니더라도 더 훌륭한 분이 지방선거에서 당선해 당의 명예를 회복하고 새롭게 지역발전에 기여하리라고 믿는다.

나는 사회활동을 하면서 누구하고 경선을 해본 적이 없다. 나보다 도전정신이 더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 진정으로 거제를 위한 거제의 정치인이 되고 지역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며 정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꼭 공인의 위치에 있지 않아도 거제만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돕는 일이다.

Q. 보수정당의 지지기반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있다
= 보수가 반성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 시민께서 꾸중하는 원인이 우리 안에 있고 해법도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필사즉생의 정신으로 다시 시민의 신뢰를 받고 회복되도록 기성 정치인인 우리의 책임을 인정하고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아야 한다. 훌륭한 새 인물을 발굴하고 영입해 당을 재건하고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면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한국당을 탈당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탈당할 수 없다. 어쨌든 한국당에서 정치에 입문했고 체질화됐지만 다만 비판할 부분은 과감하게 비판해야 한다. 정치를 하면서 많은 경험을 얻었고 이제 내가 모범이 되고자 한다. 출마하지 않더라도 영원한 한국당에 남겠다.

Q. 권민호 시장은 한국당에서 탈당했다
= 시장은 거제를 위해서 탈당했다는데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집을 옮긴다니까 서운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나중에 도지사가 된다면 거제를 위해 더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시민들이 이해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다만 정치하는 수를 내가 잘 못 읽기 때문에 우리 어머님들이 뭔 생각이 있을 거다 놔둬봐라 하는 느낌이다. 앞으로 시민이 판단할 것이다.

내가 관선시장 시절부터 사회생활을 했고 지금 시장도 옆에서 계속 보고 있는데 관선시절은 질서가 잡힌 느낌인데 민선은 그렇지가 않다. 민선시장은 정치인이니까 지역구를 관리해야 하니까 민원 안 들어줄 수 없고 어려운 점이 있다. 특히 지역정치판이 형님아우 하는 사이라서 원래는 정식으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한다. 시장에게 바로 전화하고 왜 안 해주냐고 따지는 일이 있는데 시민의식과 사회적 질서가 무너지는 병폐다.

Q.지역정치에 달라져야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 나는 지방자치 하기 전부터 거제에 살았던 사람이다. 물론 지방자치의 장점이 있지만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로 말미암은 문제점도 많다. 거제는 따뜻한 고장이고 구제하는 고장인데 지방자치를 하고부터는 동네마다 갈등이 생겨난다.

전문가들도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의 기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치인들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의원들이 먼저 당파와 계파를 짓지 말고 소통하기다. 당리당략을 뛰어넘는, 미련을 버리고 정말로 지역 후배정치인을 길러낸다는 참뜻이 있어야 한다.

기초의회는 정치보다는 봉사하는 자리다. 말 못하는 부분에서 포근하게 안을 수 있는 여성의원도 필요하다. 젊은 여성의원들이 행동하기 전에 나에게 먼저 말하면 상담을 해준다.

Q. 소신 있는 지역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주요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의원의 권리와 의무인데 비례대표라는 입장 때문에 나의 소신과 신념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정당 정치의 한계를 느낄 때 힘들었다. 비례대표가 아니었다면 정치적 신념에 상처를 덜 받았을 것이다. 많이 참고 살았는데 소신 있는 정치인이라고 해줘서 고맙다.

이쪽저쪽 치우치지 않고 앞길을 가는 정치인이고자 했다. 반기 드는 의원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의원이 되려다보니 오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정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거제가 원래 야성이 강한 곳이다. 옛날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야당 할 때 사람들이 외부에서 거제에 들어오면 초소에서 신분증 검사하고 검문검색을 했을 정도로 거제는 비판의식이 발달돼 있다.

Q. 거제시 행정에 대한 생각은
= 시청 공무원들이 전문성 있는 분이 많지만 간혹 성의 없는 분도 만나게 된다. 업무를 본인이 잘 이해하지 못해서 어떤 사업을 할 때 시의회를 이해시키지 못하고, 착오가 생기고, 예산이 깎이는 일이 종종 있다. 시장이 인사를 할 때 전문성을 고려해서 자리에 앉혀야 한다. 예를 들어 전문성 가진 사람을 관련 부서에 중점적으로 배치하면 우리도 배울 텐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

그렇지만 행정을 나무라기 전에 정치하는 내가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이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정치하면서 끊임없이 느꼈다. 시의원은 견제하는 역할이므로 확실하게 알고 파고들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공부해서 저쪽이 공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알아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다.

Q. 개발사업 위주의 거제시 행정에 대해 쓴소리도 많이 했다
= 거제시는 공익을 위한다면서 개발사업을 너무나 많이 한다. 그런데 뒤를 보면 시장이 구설수에 오르더라. 내가 섬 가꾸기에 관심이 많다. 항만과 섬 개발도 불필요한 모양을 만들면 경관을 해친다. 자연은 바라볼 때 아름다운 것이지 가지 못하는 곳까지 가려고 데크를 만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산달도를 예로 들면 산달도에 지금 사람이 많지 않고 좋은데 다리를 놓는다. 사람만 다니는 출렁다리라던가 이런 걸 해서 다리가 명물이 되어서 산달도를 살리면 몰라도 지금처럼 하면 실패를 반복하는 꼴이다.

Q. 현대산업개발 70억 사회 환원도 강력하게 주문했다
= 현대산업개발 70억 사회 환원 문제는 내가 심의의원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의제 내놓았을 때부터 의제로 내놓을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감히 시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면 되겠나. 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지 답답하고 시장이 왜 그걸 수용하는지 안타깝다.

엄격하게, 단호하게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데 현산문제 그 단면만 봐도 그렇고 예전 방식으로 길 닦는 새마을 운동만 하고 있는 분위기다. 시에서는 시가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데 그러는 동안 현대산업개발은 시민에게 읍소한다고 해놓고 정장 아무런 행동이 없다.

도리를 지키지 않는데 이것을 묵인하는 배짱은 어디서 나오나. 시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 현대산업개발 관계자가 시의회에 왔는데 내가 강하게 얘기했다. 당신들이 시민 앞에 읍소하며 약속하지 않았나.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실천은 무엇을 했나. 의지가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인데 시민 분노가 커지고 사기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Q. 다문화 정책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 다문화지원센터를 YWCA가 맡아서 하고 있는데 앞으로 다문화 대안학교가 생겨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내가 다문화 초창기부터 아이들을 업고 가르쳐봤다. 공교육 적응 못하는 다문화 자녀가 많고 범죄율도 높다. 남편과 20년씩 차이나고 생활기반이 취약한 가정이 많아서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

Q. 정치 입문은 어떤 계기로 했나
= 고향인 거제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비례대표 수락은 정치할 생각을 안 하고 있다가 어떻게 기회가 주어져 도전하게 됐다. 시민들이 생각하는 비례대표의 조건이 부족하지만 내 속에는 거제사람으로 거제여성과 내 고향 거제에 대한 울림이 있었다.

인구 5만이 안 되던 거제에 양대 조선산업단지가 생기면서 급격하게 발전했지만 사회질서가 문란해지고 삶의 갈등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천혜의 경관이 난개발로 파헤쳐져 질적으로 피폐해지는 지역사회의 아픔을 보면서 감성적인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도자의 생각과 자세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크다. 거제가 천혜의 관광자원이 있는데 지도자의 코드에 맞춰지다보니 문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하나의 예다.

Q. 정치하기 전에 많은 봉사활동을 했다
= 40여년간 대한적십자 봉사자로 활동해왔다. 거제군 시절부터 적십자 초대 여협회원이었고 한 번도 경선 없이 시민단체 추대회장을 여러 번 역임하면서 오직 애향심으로 배우고 사랑하며 열정으로 봉사활동에 앞장서고자 했다. 거제지역 크고 작은 복지시설에 내 손길 안 간 곳이 없다. 밥 한 그릇 못 먹는 분들을 위해 나 먹으려고 싸간 도시락도 주고 차비도 주고 걸어왔다. 쌀 한번 주려고 해도 다들 어려워서 어디로 줄지 망설이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 거제에 피란민들이 남아있는데 자식 오기만을 기다리며 안 나가는 분들이 있었다. 어렵게 사는 그분들에게 집 지어주고 더 기력이 약해지면 떠나기 아쉬워하는 어른들을 음성 꽃동네나 삼랑진 시설에 모셔다드렸다. 그럴 때면 어르신 눈빛이 아 내가 마지막이구나 하는데 돌아설 수가 없고 그 눈빛을 잊지 못해 울고 또 울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내가 고려장을 한 죄인이다.

거제에 고아원은 있었지만 시설이 열악했고 장애인·노인·여성복지시설은 하나도 없었다. 시내버스도 하루에 한두번 다니는 비포장도로 위에서 쌀과 라면 같은 생필품을 모아서 손에 들고 머리에 이고 산 넘고 물 건너 가도 힘든 줄 모르고 다녔다.

여성보호시설이 없어 매 맞는 여성들을 좁은 내 집에서 며칠 보호하다가 타 시·군에 보내기도 하고 남편과 화해시켜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희망과 도전정신으로 교육하고 계몽하면서 헌신한 봉사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 헌신한 선배들과 후배들에게 감사하며 지역사회에서 조용히 익어가는 삶을 살겠다.

Q. 여성가족타운 건립을 주도하고 있다
= 여성회관이 여성가족타운으로 가야 한다. 공원처럼 꾸며진 공간에서 교육받고 밥 먹고 봉사하고 생활공간이 되면 여성의 삶의 질이 좋아진다. 거제에 꼭 그러한 장소가 생기면 좋겠다. 지금 여성회관은 경남에서 가장 먼저 여성회관을 건립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다.

1970년대 적십자 회원일 때 당시는 여성운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여성회관 기금 마련이 지역 여성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때 안 팔아본 것이 없다. 절미 운동에서부터 수세미·속옷·바가지·김 등을 판매했다.

거제신문 대표님 어머님도 어려운 가운데 넘치게 도와주셨고 그렇게 당시 돈으로 기금 3400만원을 마련했지만 행정의 농간에 의해 노인복지관으로 시의 자산이 되었다. 조상도 초대 민선시장 때 민간의 것은 민간에게 돌려달라고 건의했지만 간판만 여성회관이 됐다.

시의원이 되고 나서 5분 자유발언으로 여성가족타운 건립을 제안했다. 시장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고 시정질의를 또 할 생각이다. 왜곡된 여성회관 건립과정을 시민에게 알리고 여성가족타운 설립의 희망이 생겨서 기쁘다.

Q. 시의원 임기를 마무리 하는 소회는
= 나는 정치인보다 봉사자로 남고 싶다. 이제는 거제지역 봉사자만 5만이 넘고 400여개 사회봉사단체가 등록됐다. 나는 가난해 복지정책도 복지요원도 없고 절대적으로 봉자자가 필요할 때 숙명처럼 적십자 봉사원이 됐다.

사회도 그렇지만 정치도 아픔이 먼저 들어온다. 어두운 부분이, 끌어낼 부분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가 봉사를 하는 것도 정치를 하는 것도 다 사랑하기 위함이다. 공동체 안에서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웃을 도와 함께 행복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는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떻게 보면 잠깐 청지기 역할을 할뿐이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한 가지 일이라도 더 하고 가자고 늘 마음을 다잡는다. 내 인생에 가장 큰 경험을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다.

농협중앙회 근무했던 남편은 16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둘은 둘 다 박사학위를 취득해 연구원으로 일한다. 며느리는 둘 다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앞으로 감사하며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감사하며 살았고 동료 정치인들과 공무원, 그리고 시민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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