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광 칼럼위원

▲ 김미광 칼럼위원

경기도에 있을 때 얘기다. 우리 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발생했다. 여러 학생들이 연약하고 어리숙한 한 학생을 오랫동안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했다.

견디다 못한 학생은 학교 인성부에 신고를 했고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가해 학생들이 줄줄이 교무실에 소환되었고 당연히 보호자인 부모들도 학교로 불려왔다.

자식이 당한 것에 대해 화가 머리끝까지 난 피해자 학생의 부모는 이참에 니들 한번 혼나봐라 하는 독한 마음과 태도로 악에 받쳐 가해 학생과 그 부모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인격적인 모독을 서슴지 않았다. 법으로 하겠다는 둥, 저것들도 자식이라고 낳고 미역국 먹었냐는 둥 부모들까지도 싸잡아서 폭력배 취급을 했다.

그 심정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가해자라도 보통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 수위까지 모욕을 당하거나 짓밟히면 욱하고 성질이 터지기 마련인데 내가 봐도 분명 수위가 넘었다 싶은 발언이 피해자 부모로부터 나왔다.

일부 가해 학생 학부모들은 참다못해 같이 맞붙어 대꾸를 해서 피해 학생 부모가 더욱더 분개하기도 했고, 어느 부유한 가해 학생 부모는 변호사를 써서 맞고소를 하겠다했고, 이 정도 사과 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오히려 화를 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가해 학생 중, A학생의 부모는 태도가 달랐다. A의 부모는 학교에 불려왔을 때 어떤 변명이나 자신의 자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지 않고 인격적인 모욕을 받았을 때도 응대 하거나 맞붙어 싸우지도 않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진정 진심으로 가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자식을 잘못 가르친 모든 책임을 지겠다했다. 끝까지 온유한 마음을 잃지 않고 우리가 피해자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했겠냐며 오히려 다른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그 중에서 이왕에 학교 폭력으로 찍할 바에야 법정으로 가자며 변호사를 부르겠다는 부모를 향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아이들이 잘못한 일을 이렇게 변호사를 불러 해결해주고 스스로 반성하고 뉘우칠 기회를 빼앗는다면 앞으로 애들이 어떻게 도덕성을 겸비하겠소. 이렇게 우리가 아이들이 잘 못한 일을 감싸고돌면 언제든 아이들은 죄를 지으면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 빌기 보다는 부모에게 의지하고 자신은 부모 뒤로 숨을 것이 아닙니까. 긴 인생을 살다보면 실수도 하는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자신이 책임지는 태도를 길러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모로서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 화가 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느냐가 우리 부모가 할 일입니다.’

내 기억이 오래되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A의 부모가 다른 부모들을 설득한 내용은 대충 이랬다.

A부모의 그런 태도에 다른 어떤 부모도 토를 달지 못했다. 물론 가해 학생들은 모두 합당한 처벌을 받았지만 누구도 부당하다고 항의하지 않았고, 가해 학생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끝까지 냉정을 유지했다. A학부모의 진심어린 태도와 설득이 다른 학부모들을 잠잠케 한 것이었다.

하지만 A학생의 학부모의 사과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날부턴가 그들은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아침 일찍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지도를 했고, 점심시간이면 어디선가 나타나 교사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학교의 으쓱한 곳을 다니며 학생들이 담배를 피거나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때로는 학교 주변의 쓰레기를 줍고 다녔다.

한 번은 어떻게 매일같이 학교에 나오시냐 물었더니, “사는데 급급해서 자식 교육을 놓친 것 같아 이제라도 바로 잡아 보려고 한다” 고 하셨다. 그런 부모를 둔 A학생이 그 후 어떻게 바뀌고 어떤 학생이 되었는지는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그 학생은 이제는 담임이었던 나도 비서를 통해 미리 약속을 잡아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 인천의 8살짜리 초등학생을 납치해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건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문제는 직접 살해를 한 17살 범인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주장하는데 사람들은 살인자와 그 부모가 심신미약을 주장하여 형량을 감형시키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또 시신의 일부를 건네받은 공범의 부모는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서 문제가 됐다. 좁은 대한민국에서 어지간하면 신상이 털릴 법도 한데 인터넷 어디에서도 그 능력 있는 부모의 신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꽁꽁 숨었다.

그만큼 사회적 지위나 재력이 대단하다는 말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 부모가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거액을 들여 변호사를 고용하고 딸을 어떻게 변호할지가 참으로 궁금하다.

사랑하는 자식이 한 순간 실수를 한 것이니 온갖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감옥살이를 조금이나마 단축시켜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딸래미들은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형량을 채우고 나와서 더 엽기적인 사건을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그 부모들에게 강력하게 말하고 싶다. 더 처절한 자기반성과 참회가 없다면 말이다. 참으로 대조적인 두 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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